췌장암이 커지면 담즙이 지나가는 담도가 막히는 일이 흔합니다. 담즙이 장으로 흐르지 못하면 황달과 가려움, 복통이 나타나고 간 기능도 나빠질 수 있습니다. 이때 환자는 막힌 담도에 배액관을 넣어 담즙을 몸 밖으로 빼내야 합니다.
문제는 치료 기간이 길어질수록 배액관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환자는 배액관 주머니를 서너 개, 많게는 네다섯 개씩 몸에 달고 생활합니다. 외출과 수면은 물론이고, 목욕이나 가벼운 움직임조차 큰 부담이 됩니다.
몸 밖 배액관 대신 몸속에 만든 새로운 길
서울아산병원 송태준 소화기내과 교수는 이런 환자들을 위해 내시경으로 몸속에 새로운 담즙의 길을 만드는 시술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담도가 막힌 부위 아래쪽으로 접근하기 어려울 때, 초음파 내시경으로 담관이나 쓸개를 확인한 뒤 위 또는 십이지장과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새로 만든 통로에 스텐트를 삽입하면 담즙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대신 다시 소화관으로 배출될 수 있습니다. 외부 배액관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환자는 주머니를 관리해야 하는 불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한 시술은 아닙니다. 암의 위치와 진행 정도, 기존 수술 여부, 담도와 주변 장기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출혈이나 감염 같은 합병증 위험도 있어 숙련된 의료진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내시경 초음파로 암에 직접 접근하다
송 교수는 담즙 배액뿐 아니라 내시경 초음파를 활용한 췌장암 치료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시경 초음파로 암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바늘 형태의 전극을 병변에 삽입하고, 고주파 에너지로 암 조직을 태워 없애는 방식입니다.
이 치료는 수술이 어렵거나 항암치료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환자에게 고려될 수 있습니다. 암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더라도 종양의 크기를 줄이면 통증과 담도 폐쇄를 완화하고, 항암제 치료에 대한 반응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송 교수는 추가 수술이 불가능하고 항암제에도 반응하지 않던 환자에게 반복적인 내시경 절제술과 고주파 열치료를 시행해 담도와 췌도를 침범한 암을 제거한 사례를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환자조차 치료 가능성을 믿기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러 치료법을 조합한 결과였습니다.
고난도 치료의 목표는 생존 기간과 삶의 질
췌장암은 수술 가능한 환자가 전체의 20%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치료가 까다롭습니다. 그렇다고 수술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시경 시술과 항암치료, 통증 조절, 담도 배액을 적절히 결합하면 생존 기간을 늘리고 일상생활의 불편을 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담도가 막혀 반복적으로 배액관을 교체해야 하거나, 황달과 복통이 지속되는 환자라면 치료 방법이 한 가지뿐인지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몸 밖으로 나와 있던 담즙의 길을 몸속으로 돌리는 치료가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한 연구에서 피어난 희망: 고난도 췌장암 환자에 담즙길 열고 초음파 시술로 암 제거
모두가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한 연구가 실패로 끝났다면, 대부분은 그 결과를 뒤로한 채 다음 연구로 넘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송태준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달랐습니다. 일반 스텐트보다 항암제를 방출하는 스텐트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가설이 맞지 않자, 결과를 숨기거나 단순한 실패로 치부하지 않았습니다. 왜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왔는지 분석하고, 이후 연구가 참고할 수 있는 설계 방향까지 제시했습니다.
이 연구는 ‘네거티브 연구’로 불렸지만 2010년 미국소화기내시경학회에서 마샤 드레이어상을 받았습니다. 성공한 결과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공개하는 일도 환자 치료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점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치료 기술은 언제나 한 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예상과 다른 결과를 외면하지 않을 때, 다음 단계로 나아갈 단서가 만들어집니다.
송 교수의 도전은 담도 폐쇄 치료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췌장암이 진행되면 담즙이 흐르는 길이 막히고, 환자는 몸 밖으로 담즙을 빼내는 배액관을 달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내시경으로 담즙이 흐를 새로운 길을 만들면 외부 배액관을 줄이거나 없애 환자의 일상생활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고난도 췌장암 환자에 담즙길 열고 초음파 시술로 암 제거’라는 치료 접근은 단순히 암세포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막힌 담도와 통증 같은 합병증까지 함께 관리하려는 시도입니다.
그 가능성을 보여준 환자도 있습니다. 위암 수술과 간·담도 절제술을 받은 뒤 바터팽대부에 다시 암이 생긴 환자였습니다. 추가 수술은 어려웠고 항암치료에도 반응하지 않았지만, 송 교수는 치료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내시경 절제술과 고주파 열치료를 시행해 담도와 췌도까지 침범한 암을 제거했습니다.
물론 모든 환자에게 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시경 초음파를 이용한 고주파 치료 역시 환자의 상태와 암의 위치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지며, 일부는 연구 단계의 치료로 평가됩니다. 그럼에도 이 사례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췌장암 진단이 곧 치료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술이 어렵거나 항암제 효과가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내시경 치료, 담도 배액, 통증 조절, 항암요법을 조합하면 생존 기간과 삶의 질을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송 교수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은 막연한 의지가 아니라, 실패를 분석하고 새로운 시술법을 개발하며 환자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치료 전략인 셈입니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28004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