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에 적은 오답을 지웠다는 이유로 딸 미도의 손바닥에 매가 떨어진다. 예고 없이 집을 찾아온 교사에게 어머니 헬렌은 촌지를 건넨다. 1992년 호주에서 서울 개포동으로 온 가족에게 한국의 학교는 익숙한 한인 사회와는 또 다른, 낯선 규칙의 세계였다.
《파친코》에서 재일조선인 가족의 긴 시간을 그린 이민진은 신작 《아메리칸 학원》에서 1990년대 이후 한인 가족의 삶을 따라간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다시 미국으로 이어지는 이주의 여정에서 가족을 움직이는 힘은 자녀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려는 부모의 마음이다. 학교와 입시를 둘러싼 풍경은 그 열망이 얼마나 절박한지 보여준다.
처음엔 아이에게 공부를 재촉하지 않았던 헬렌도 다른 한국 엄마들을 만나며 좋은 학원을 찾아 나선다. 수강료가 부담스러워도 아이들을 받아 달라고 사정하고, 학원에 다닌 미도는 친구를 사귀며 학교생활에 적응한다. 그러나 교육이 가족의 모든 위기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이민진이 ‘학원’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은 입시 경쟁만이 아니라, 급변하는 사회에서 자녀의 삶과 가족의 생계를 함께 지키려 애쓰는 한인들의 현실이다.
파친코 이민진, 이번엔 학원으로 한인의 삶 해부: 배움과 생존이 교차하는 곳
미도의 성적을 끌어올리고 학교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운 학원. 그렇다면 그곳은 가족의 삶까지 지켜줄 수 있었을까요? 이민진의 소설에서 학원은 아이가 공부하는 장소를 넘어, 이주와 생계를 견디는 가족의 여러 사정이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한국에서 아이들은 학원에서 친구를 만나고 낯선 학교생활에 적응합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학원은 입시 준비의 장으로 이어지지만, 그 의미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인 부모에게 학원은 아이를 맡기고 일할 수 있는 돌봄의 공간이자, 직접 운영하며 생계를 꾸리는 일터입니다. 비슷한 기대와 걱정을 지닌 이들이 만나 서로를 지탱하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물론 교육이 가족을 모든 역경에서 구해주지는 않습니다. 학원은 미도가 학교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존은 부당한 지시에 휘말린 뒤 호주로 떠나야 합니다. 부모 세대 역시 학벌과 경력만으로 안정된 삶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 교육이 생존의 수단이 되지만, 그 수단만으로 삶의 불안을 없앨 수는 없는 셈입니다.
그래서 소설 속 학원을 ‘기형적 교육열’이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곳에는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는 부모의 열망뿐 아니라, 이민자가 노동하고 아이를 돌보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현실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작품 속 학원 운영자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부모를 구원하는 데 매달리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풀며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녀를 지키려는 부모의 마음을 부정하기보다, 아이가 부모의 삶을 대신 책임지는 존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메시지입니다. 학원은 생존을 돕는 공동체일 수 있지만, 결국 아이들이 자기 삶을 꾸려가도록 준비시키는 곳이어야 한다는 질문이 남습니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101670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