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국제법 무시’ 트럼프 보란듯 … 국제법 수호자에 노벨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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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by 매일경제

“박수를 조금 더 치면 트럼프와 상을 나눠야 할 수도 있겠네요.”

나비 필라이의 농담에 웃음이 터졌지만, 그 말은 가벼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를 압박하고 국제법의 권위를 흔드는 권력, 그리고 그 법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의 긴장이 배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노벨위원회가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필라이를 선정한 것은 아닙니다. 위원회는 국제법 체계와 관련 기관이 압박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필라이의 여정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됐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변호사로 활동하며 정치범과 반인종차별 운동가들의 권리를 변호했고, 로벤섬에 수감된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이들의 권리 보호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이후 남아공 최초의 비백인 여성 고등법원 판사가 된 그는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일하며 전쟁범죄와 집단학살을 법정에서 다루는 데 참여했습니다.

그가 국제사회의 정의를 상징하게 된 데에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제도 안으로 가져오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르완다 학살 재판에서는 성폭력이 집단학살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오는 데 역할을 했고, 유엔 인권최고대표로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에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의 수상은 한 사람의 경력에 대한 인정인 동시에, 국제법이 흔들릴 때 누가 그 원칙을 지킬 것인지 묻는 신호처럼 읽힙니다. 박수 속 농담 뒤에 남은 질문도 바로 그것입니다. 법의 권위가 압박받는 시대에, 정의를 지키는 일은 누구의 몫일까요?

‘국제법 무시’ 트럼프 보란듯 … 국제법 수호자에 노벨평화상, 정치범 변호에서 전쟁범죄 심판까지

나비 필라이의 법조 인생은 법정 밖에서 시작됐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던 그는 1967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나탈 지역에 법률사무소를 열고 반아파르트헤이트 활동가와 정치범을 변호했습니다. 로벤섬에 수감된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정치범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그의 활동 무대는 곧 국제사회로 넓어졌습니다. 1995년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으로 선출된 필라이는 르완다 학살을 다룬 장폴 아카예수 사건 재판에 참여했습니다. 이 판결은 강간과 성폭력이 집단학살을 구성할 수 있다고 인정한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이후 국제형사재판소(ICC) 초대 재판관단에도 합류해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를 법의 심판대에 올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로 재임할 때는 한국의 인권 현안에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2014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두고 일본 정부에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해결책을 촉구하며, “역사 속에 묻어둘 일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대응과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설치를 요구했습니다. 그 뒤 유엔 인권이사회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이번 노벨평화상은 국제법을 지키려는 노력이 압박받는 시기에 나왔습니다. 노벨위원회가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위원장은 국제법 체계와 관련 기관이 공격받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필라이의 수상은 정치적 압력 속에서도 인권 침해와 전쟁범죄를 법의 언어로 기록하고 책임을 묻는 일이 왜 중요한지 되새기게 합니다. 그의 긴 여정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국제법을 지키는 일은 누구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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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world/12172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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