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RNA는 DNA의 명령을 단백질로 옮긴 뒤 곧바로 사라지는 ‘일회용 메신저’에 불과하다고 여겨졌습니다. DNA가 유전정보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설계도라면, RNA는 그 내용을 리보솜에 전달하는 임시 문서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체내에서 쉽게 분해되고 구조적으로도 불안정하다는 특성은 RNA를 의약품으로 활용하는 데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점처럼 보였던 특성은 오히려 RNA 치료제의 장점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RNA는 DNA처럼 유전체에 영구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세포가 어떤 단백질을 만들지 비교적 신속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발현을 낮추거나,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일시적으로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치료 목표에 따라 유전정보의 흐름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RNA는 단순한 전달자를 넘어 독립적인 치료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DNA와 단백질 사이에 숨겨져 있던 조절 능력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에 따르면 DNA의 정보는 RNA로 옮겨지고, RNA의 정보는 단백질로 번역됩니다. 초기에는 이 과정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단순한 전달 체계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연구가 쌓이면서 RNA가 단순히 정보를 운반하는 수동적인 매개체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RNA는 어떤 유전자가 얼마나 발현될지 조절하고, 특정 단백질의 생산을 선택적으로 줄이거나 늘릴 수 있습니다. RNA의 염기서열을 설계하면 세포가 인식하는 유전정보를 바꿀 수 있고, 이를 통해 기존 의약품으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표적에도 대응할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단백질을 직접 찾아 결합하는 전통적인 신약 방식과 달리, 단백질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에서 질병의 원인을 조절하는 접근법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불안정성은 기술로 극복할 수 있었다
RNA 의약품의 상용화를 가로막은 핵심 문제는 체내 불안정성과 세포 안으로의 전달이었습니다. RNA는 체내 효소에 의해 쉽게 분해될 수 있고, 세포막을 통과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원하는 조직까지 RNA를 보호해 운반하고, 세포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전달 기술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RNA의 화학적 구조를 일부 바꾸고, 지질나노입자와 같은 전달체에 RNA를 담는 연구가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RNA가 체내에서 너무 빨리 사라지는 것을 막고 표적 세포에 도달할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과거에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여겨졌던 불안정성이 정밀하게 조절되면서, RNA는 오히려 짧은 시간 동안 필요한 곳에서 작동한 뒤 사라지는 ‘조절 가능한 치료 물질’로 다시 평가받게 됐습니다.
백신과 치료제가 증명한 RNA의 확장성
RNA 플랫폼의 가능성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전 세계에 각인됐습니다. mRNA 백신은 바이러스 단백질을 직접 주입하는 대신, 우리 세포가 항원 단백질을 일시적으로 만들도록 유전정보를 전달했습니다. 빠른 설계와 생산이 가능하다는 RNA의 특성이 신종 감염병 대응에서 강력한 장점으로 작용한 사례입니다.
RNA는 예방을 넘어 치료 영역에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스핀라자는 특정 RNA의 작동 방식을 조절해 필요한 단백질의 생성을 돕습니다.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 렉비오는 콜레스테롤 대사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발현을 낮추는 방식으로 효과를 냅니다. 서로 다른 질환을 대상으로 하지만, 두 치료제 모두 DNA를 직접 바꾸기보다 RNA 단계에서 유전정보의 발현을 조절한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결국 유전정보 전달자에서 치료제로: RNA 플랫폼의 탄생은 RNA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재정의된 과정입니다. RNA는 더 이상 DNA와 단백질 사이를 잠시 오가는 수동적인 중간자가 아닙니다. 유전정보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발현될지를 조절하는 능동적인 도구이자 새로운 치료 전략의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유전정보 전달자에서 치료제로: RNA 플랫폼의 탄생
RNA 치료제는 단백질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한다. 어떤 유전자의 작동을 낮추거나, 반대로 필요한 단백질이 만들어지도록 세포에 지시하는 방식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자였던 RNA가 치료의 지휘자로 변신한 순간이다.
이 발상의 출발점은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 기술이다. ASO는 특정 메신저 RNA(mRNA)에 결합해 단백질 생성 과정을 방해하거나, 잘못된 유전정보가 올바르게 처리되도록 유도한다.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스핀라자(Spinraza)가 대표적이다. 스핀라자는 SMN2 유전자의 RNA 처리 과정을 조절해 운동신경세포 생존에 필요한 SMN 단백질 생성을 늘린다.
RNA를 이용해 질병 관련 유전자의 발현을 선택적으로 끄는 기술도 발전했다. 작은 간섭 RNA(siRNA)는 표적 mRNA를 분해해 특정 단백질의 생산을 줄인다.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 렉비오(Leqvio)는 PCSK9 단백질 생성을 유도하는 RNA를 억제한다. 그 결과 간에서 LDL 콜레스테롤 제거를 돕는 수용체가 더 오래 유지되고, 혈중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다.
반대로 필요한 단백질을 직접 만들도록 세포에 지시하는 방식도 있다. mRNA 백신은 항원 단백질의 설계정보를 세포에 전달하고, 세포는 이를 바탕으로 항원을 만든다. 면역계는 이 항원을 학습해 실제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방어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mRNA가 연구실을 넘어 대규모 의약품 플랫폼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물론 RNA가 치료제로 발전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장벽이 많았다. RNA는 체내에서 쉽게 분해되고, 세포막을 통과하기도 어렵다. 연구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RNA의 화학적 구조를 안정화하고, 필요한 조직까지 전달하는 지질나노입자와 다양한 전달체를 개발했다. 표적 부위에 RNA를 정확히 보내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RNA 의약품의 활용 범위도 넓어졌다.
이처럼 유전정보 전달자에서 치료제로: RNA 플랫폼의 탄생은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관점 자체가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치료의 대상이 완성된 단백질에만 머무르지 않고, 단백질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인 유전정보의 흐름으로 확장된 것이다. RNA 플랫폼은 앞으로 희귀질환과 만성질환은 물론, 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맞춘 정밀의료를 구현하는 핵심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313420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