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유럽연합(EU)이 새로 만들거나 고친 법령과 행정조치는 2575건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27개 회원국이 관련 내용을 국내법에 반영한 조치까지 더하면 약 6100건입니다. 규제를 덜어내려는 법안도 다시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규제 완화가 또 다른 규제로 이어지는 역설이 드러납니다.
EU 법은 기본법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유럽의회와 이사회가 큰 원칙을 정하면, 집행위원회가 위임·이행 법령으로 세부 기준을 마련합니다. 일부 지침은 각 회원국이 국내법으로 옮겨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의무가 더해지기도 합니다. 이른바 ‘골드 플레이팅’입니다. 규칙을 구체화하고 국내 제도에 맞추는 과정이 겹치면서 기업이 확인하고 준수해야 할 항목도 늘어납니다.
복잡한 절차는 규제를 줄이는 작업마저 늦춥니다. EU 집행위원회가 기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내놓은 단순화 패키지도 기존 법을 고치는 새 법안들로 구성됐습니다. 제안 이후 의회와 회원국의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실제 현장에서 효과를 체감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규제 기준이나 시행 시기가 바뀌면 기업은 대응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결국 기업이 마주하는 부담은 규제의 양뿐 아니라 불확실성입니다. 규제 완화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새 법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하위 규정과 회원국별 국내법까지 함께 정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규제 없애려 또 법 만든다’는 입법 연쇄가 계속되고, 기업은 규정이 확정될 때까지 대응 비용을 감수하게 됩니다.
작년 만든 법안만 6100건…규제 없애려 또 법 만든다: 법 하나에 하위 규정 14개
법 하나가 만들어지면 기업의 확인 절차도 끝나는 걸까요? 유럽연합(EU)에서는 기본 법률 뒤에 세부 규정과 국내법 정비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브뤼겔이 집계한 2019~2024년 통상입법은 435건이지만, 같은 기간 위임법은 934건, 이행법은 5131건에 달했습니다. 법률 한 건당 하위 법령이 평균 14건꼴로 생긴 셈입니다.
문제는 규정의 수만이 아닙니다. 회원국이 EU 지침을 국내법으로 옮기면서 의무를 추가하는 ‘골드 플레이팅’이 발생할 수 있고, 시행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규정이 다시 바뀝니다. 시행 시점마저 미뤄지면 기업은 어떤 기준에 맞춰 준비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투자와 제품 출시 계획도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규제를 줄이려는 시도 역시 새 법안과 심의, 회원국의 법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작년 만든 법안만 6100건…규제 없애려 또 법 만든다’는 현실은 단순화 정책마저 행정 절차에 갇힐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해법은 규정을 더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합니다. 법안 마련 단계에서 기존 규정과의 중복을 점검하고, 회원국별로 의무가 덧붙지 않도록 공통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시행 후에는 실제 부담을 정기적으로 평가해 효과가 낮은 규정을 정리하고, 변경 사항과 적용 시점을 충분히 예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규제 단순화가 기업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려면, 새 절차를 추가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절차를 걷어내는 일이 먼저입니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102167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