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가 끝나지 않은 사건에 누군가는 타살을 단정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연쇄살인 가능성과 특정 국적 관광객의 연루설까지 제기했습니다. 근거는 수사 결과가 아니라 ‘점괘’였습니다. 하지만 영상은 빠르게 퍼졌고, 수십만 회의 조회수와 구독자로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피해자 유족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고인의 죽음을 다룬 영상이 새로 올라올 때마다 내용을 확인하고, 삭제를 요청하고, 때로는 법적 대응을 검토해야 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조차 무속 유튜브가 끊임없이 끌어내리는 셈입니다.
수사보다 먼저 범인을 만들어낸 영상들
일부 무속 유튜브 채널은 제주 실종·사망 사건을 소재로 고인의 사망 원인과 범행 방식, 범인의 인상착의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범인은 두 명이다”, “연쇄살인일 수 있다”는 식의 표현도 등장했습니다.
한 영상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연루 가능성을 암시하고, 누군가 시신을 옮겼다는 주장까지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은 경찰 수사로 확인된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영상 제목과 썸네일은 단정적인 표현을 앞세웠고, 이용자들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추측이 단순한 개인 의견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상이 확산될수록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는 사실처럼 소비되고, 사건을 둘러싼 편견과 공포는 커집니다. 유족에게는 고인의 죽음이 또 다른 자극적인 서사로 재가공되는 과정 자체가 고통입니다.
조회수로 바뀐 한 사람의 죽음
무속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사건은 조회수와 구독자를 끌어올리는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채널은 관련 영상을 올린 뒤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신규 구독자 증가 폭도 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권력이 사건의 실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사이, 비공식적인 해석이 그 빈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시청자는 답답한 수사 상황에서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고, 제작자는 그 심리를 겨냥해 더 자극적이고 확신에 찬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그렇게 고인의 죽음은 애도와 진실 규명의 대상이 아니라 ‘콘텐츠’로 소비됩니다.
특히 “점괘에 그렇게 나온다”, “무언가가 보인다”는 표현은 객관적인 사실 주장과 추측의 경계를 흐립니다. 근거가 부족한 말이라도 점술이라는 형식을 거치면 책임을 피하기 쉬워지고, 플랫폼 역시 이를 일반적인 허위정보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유족이 감당해야 하는 끝나지 않는 2차 피해
유족은 고인을 찾고 사건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이름과 생년월일 등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도 합니다. 수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절박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공개된 정보는 무속 콘텐츠가 고인을 특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료로 악용될 위험도 안고 있습니다.
영상이 퍼진 뒤 유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게시물마다 삭제를 요청하고,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 법적 대응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고인을 잃은 슬픔에 더해, 타인의 추측을 감시하고 바로잡는 부담까지 떠안는 것입니다.
‘점괘에 범인이 보인다…무속 유튜브에 분노한 제주사건 유족’이라는 상황은 단지 한 가족의 불쾌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닙니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 자극적인 추측이 확산되는 구조, 그리고 그 대가를 유족과 사회가 함께 치르는 현실을 드러냅니다. 진실을 기다려야 할 사건에서 가장 먼저 소비된 것은 사실이 아니라, 한 사람의 죽음과 남겨진 가족의 고통이었습니다.
공권력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진실이 아니라 조회수였다 — 점괘에 범인이 보인다…무속 유튜브에 분노한 제주사건 유족
사건의 공식적인 답이 늦어질수록 사람들은 비공식적인 확신에 기대기 시작한다. 경찰 수사가 타살인지 자살인지조차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사이, 온라인에서는 “범인이 보인다”는 단정이 빠르게 퍼진다. 점괘에 범인이 보인다…무속 유튜브에 분노한 제주사건 유족이라는 상황은 단순한 자극적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다. 공권력이 채우지 못한 설명의 빈자리를 누군가의 점괘와 추측이 대신하고 있다는 데 본질이 있다.
불안이 커질 때 점술과 운세를 찾는 현상은 이번 사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대표 운세 앱의 월간 이용자는 사회적 불안과 강력 사건 논란이 이어진 시기에 반등했다. 개별 사건과 이용 증가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답과 심리적 위안을 찾는 경향을 보인다.
과거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범죄자 신상 공개나 응징을 내세운 사적제재 콘텐츠였다. 공권력과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가 낮을수록 “내가 직접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이제는 그 흐름이 무속 콘텐츠로 옮겨가고 있다. “타살이다”, “연쇄살인이다”, “특정 국적의 범행이다” 같은 표현은 수사 결과가 아니라 점괘에 기대고 있지만, 강한 확신과 분노를 담을수록 더 많은 클릭과 반응을 끌어낸다.
결국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지연될수록 사건은 콘텐츠 시장의 먹잇감이 된다. 유튜브는 의혹을 제기한 사람에게 조회수와 구독자를 안겨주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삭제를 요청하는 일은 유족의 몫으로 남는다. 유족이 수사를 돕기 위해 공개한 피해자의 정보가 오히려 무속 영상의 소재가 되고, 고인의 죽음은 점사와 빙의라는 말로 반복 소비된다.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무속 영상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동안, 유족은 두 번 싸워야 한다. 한 번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이고, 또 한 번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지우기 위해서다. 국가 시스템이 답하지 못한 시간의 비용을 왜 피해자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지, 이 사건은 묻고 있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9078162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