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도 회사채 발행도 아닌데 대기업들은 어떻게 조 단위 자금을 끌어왔을까요? 올해 주요 대기업이 주가수익스와프(PRS)를 통해 조달한 금액은 6조3505억원에 달합니다. 포스코홀딩스, SK, 한화 등 대기업이 잇따라 PRS를 활용하면서 새로운 기업 자금조달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포스코·SK·한화까지 뛰어든 PRS 시장
올해 포스코홀딩스는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포스코DX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각각 2조184억원과 4817억원 규모의 PRS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SK는 SK바이오팜 지분을 활용해 1조2500억원을 조달했고, 한화시스템과 한화솔루션도 각각 1조7000억원, 4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PRS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가파르게 성장했습니다.
- 2022년: 992억원
- 2023년: 4797억원
- 2024년: 4조1436억원
- 2025년: 9조8129억원
- 올해: 6조3505억원
2023년 이후 누적 계약 규모는 이미 20조7867억원에 이릅니다. 대기업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대규모 현금을 확보하는 방식이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으로 자리 잡은 셈입니다.
주식을 팔지 않고 현금을 확보하는 구조
PRS는 주가 변동에 따른 손익을 계약 당사자 간에 정산하는 장외파생상품입니다. 기업은 보유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증권사 또는 특수목적법인(SPC)과 계약을 맺고 자금을 받습니다.
계약 기간 동안 주가가 기준가격보다 오르면 증권사가 상승분을 기업에 지급합니다.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면 기업이 증권사에 손실을 보전합니다. 기업은 여기에 약정된 이자와 수수료를 부담합니다.
AA-급 대기업의 경우 금리와 수수료를 합친 총 조달비용은 연 5%대 중반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계약 기간은 약 3년이며, 기업 신용도와 시장금리 등이 비용을 결정합니다.
PRS의 핵심은 기업이 지분을 당장 시장에 매각하지 않고도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규모 블록딜처럼 한꺼번에 매물이 쏟아져 주가가 하락하거나 개인투자자의 반발을 부를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증권사와 SPC가 맡은 유동성 공급 역할
대형 증권사들은 자기자본과 발행어음 등을 활용해 PRS 거래의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행 규정상 발행어음 자금으로 파생상품인 PRS를 직접 편입하는 데는 제약이 있습니다.
이에 일부 증권사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한 뒤 해당 법인에 자금을 대여하는 구조를 활용합니다. 기업과 PRS 계약을 맺는 주체는 증권사가 아닌 SPC가 되고, 증권사는 사실상 자금 공급자 역할을 맡는 방식입니다.
발행어음 운용 규모가 10조~20조원에 이르는 대형 증권사들이 시장에 참여하면서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조 단위 자금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일부 증권사는 향후 종합투자계좌(IMA)에 PRS 상품을 편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부채비율 관리에는 유리하지만 회계 논란은 남아
기업 입장에서 PRS는 일반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과 달리 차입금 증가로 인식되지 않아 부채비율 관리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기업이 주가 하락 위험을 대부분 부담한다는 점에서 담보대출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에 따라 PRS를 회계상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한국회계기준원은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에 관련 질의를 공식 제출했지만, 아직 최종 결론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PRS가 대기업의 새로운 자금줄로 떠오른 배경에는 자금 조달의 유연성, 부채비율 관리, 블록딜 부담 회피라는 세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다만 시장이 커질수록 파생상품 위험과 회계 투명성에 대한 기준도 함께 정교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출인가, 파생상품인가…‘대기업 자금줄 된 PRS…올 공급액 6.3조’ 뒤의 숨은 위험
겉으로는 보유 지분을 매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가가 하락하면 기업이 손실을 부담하는 PRS는 일반적인 주식 처분과 성격이 다릅니다. 계약기간 동안 기업은 증권사에 약정 이자와 수수료를 지급하고, 기초자산의 주가가 기준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하락분을 보전해야 합니다. 반대로 주가가 오르면 증권사가 상승분을 기업에 정산합니다. 형식은 지분 거래와 파생상품 계약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주가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증권사와 SPC가 만든 유동성 공급망
대기업이 조 단위 자금을 PRS로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형 증권사의 유동성 공급이 있습니다. 증권사들은 자기자본이나 발행어음 운용 자금을 활용해 PRS 거래에 참여합니다. 다만 현행 규정상 발행어음 자금으로 파생상품인 PRS를 직접 편입하는 데는 제약이 있습니다.
이에 일부 증권사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해당 법인에 자금을 대여하는 방식을 활용합니다. 기업과 PRS 계약을 체결하는 주체는 증권사가 아니라 SPC가 되는 구조입니다. 거래에 따라 복수의 SPC가 동원되기도 합니다. 이 방식은 규제상 직접 투자를 피하면서 대기업에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거래의 실질과 형식이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둘러싼 논란도 남깁니다.
부채비율 관리에는 유리하지만,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PRS의 가장 큰 매력은 재무제표상 차입금과 부채비율을 관리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 대출이나 회사채 발행 대신 보유 지분을 활용하기 때문에 기업은 외형상 부채 증가를 최소화하면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급하게 계열사 지분을 블록딜로 매각해 주가를 압박하는 상황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채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해서 상환 부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 기업이 증권사에 손실을 보전해야 하고, 계약이 만기에 가까워질수록 시장 변동성이 실제 자금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주가 하락과 기업 실적 악화가 동시에 발생하면 PRS 관련 지급 의무가 유동성 위기를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IFRS 해석 결과에 따라 시장 판도 바뀔 수도
핵심 쟁점은 PRS를 회계상 주식 매각으로 볼지, 아니면 실질적인 금융 거래로 볼지입니다. 기업이 주가 하락 위험을 대부분 부담한다면, 명목상 지분을 처분했더라도 경제적 실질은 담보대출과 유사하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한국회계기준원은 지난해 12월 PRS 회계처리 방식을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에 공식 질의했습니다. 향후 해석 결과에 따라 관련 거래를 부채성 금융으로 반영해야 한다면, 지금까지 부채비율 관리 수단으로 활용해온 PRS의 장점은 크게 약화될 수 있습니다. 공시와 자본적정성 관리 기준이 달라지고, 증권사의 SPC 활용 방식에도 추가 규제가 뒤따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기업 자금줄 된 PRS…올 공급액 6.3조’라는 성장세는 기업과 증권사 모두에게 새로운 자금 조달 시장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거래의 실질이 대출에 가깝다면, 회계와 규제의 시계가 언젠가는 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PRS가 영리한 금융 기법으로 남을지, 새로운 부채와 규제 리스크로 되돌아올지는 IFRS 해석과 향후 감독 당국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25213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