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성공한 화풍을 얻은 화가는 대개 그 세계를 오래 지키려 합니다. 익숙한 방식은 안정적이고, 이미 인정받은 작품은 쉽게 버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서보에게 예술은 완성된 답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여러 차례 허물고, 낯선 재료와 색을 끌어들이며 다시 세웠습니다.
박서보의 변화는 1967년 시작한 연필 묘법에서 출발합니다. 캔버스 위에 흰 안료를 바르고 마르기 전 연필 선을 반복해 그으며, 그는 마음을 비우는 수행의 흔적을 화면에 남겼습니다. 선을 긋고 또 긋는 행위는 자기표현을 앞세우기보다 체념과 반복, 호흡의 리듬을 작품으로 바꾸는 과정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서양 종이 대신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지는 안료를 흡수하고 손의 움직임에 저항하며, 평면 위에 골과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재료가 달라지자 화면의 질감과 작업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박서보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쑥과 담뱃잎, 먹물 등 자연에서 얻은 색을 실험하며 무채색의 세계를 벗어났습니다.
2000년대의 색채 묘법은 또 다른 전환점이었습니다. 단풍과 풀, 꽃에서 발견한 색을 화면에 옮기며 그는 색을 ‘치유의 색’이라고 불렀습니다. 디지털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회화를 단순한 자기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보는 이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공간으로 바꾸고자 한 것입니다.
말년에도 변화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박서보는 33년 만에 연필 묘법을 다시 꺼내 색을 입혔고, 이후에는 오래된 신문지 위에 유성 안료를 칠한 뒤 연필로 선을 그었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새로운 재료가 결합한 신문지 묘법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가 말한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는 신념은 단순히 새로운 기법을 좇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성공에 안주하는 순간 예술은 생명력을 잃는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박서보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익숙한 방식을 낯설게 만들며 변화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세계는 한 가지 화풍으로 규정되지 않고, 수행과 재료, 색과 시간의 기록으로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자기표현을 넘어 타인의 마음을 치유하다 |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3주기에 박서보를 돌아본다
박서보는 디지털 이미지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시대에 회화의 역할을 다시 물었다. 화가의 감정과 개성을 일방적으로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회화가 살아남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의 결론은 분명했다. 그림은 자기표현의 도구를 넘어, 바라보는 사람의 스트레스를 흡수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매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이어진 색채 묘법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박서보는 기존의 무채색 화면에서 벗어나 단풍과 풀, 꽃에서 발견한 색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단순히 화려한 색을 덧입힌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연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시간과 빛, 공기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색의 차이를 화면에 재현하려 했다.
그가 색을 ‘치유의 색’이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면 속 색채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반복되는 선과 함께 조용한 리듬을 만든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특정한 이미지를 해석하기보다 색의 깊이와 선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복잡한 생각은 잠시 멈추고, 호흡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박서보의 색채 묘법은 수행과 반복이라는 기존의 원리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회화의 기능을 확장한 작업이다. 캔버스를 채운 선은 작가가 자신을 비우는 행위인 동시에, 관람객이 자신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화가의 변화가 관람객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3주기에 박서보를 돌아본다’는 전시는 단순한 양식의 변천사가 아니다. 연필과 한지, 무채색과 색채를 오가며 박서보가 끝없이 질문한 것은 회화가 오늘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였다. 색채 묘법은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자, 타인의 마음을 향해 나아간 가장 따뜻한 변화였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248379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