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친한파’ 제임스 레이니 전 美대사 별세…1차 북핵위기 때 카터 방북 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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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by 매일경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한반도에 전운이 짙어지던 1994년. 북핵 문제는 군사적 충돌로 번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한 미국 대사였던 제임스 레이니는 이 위기의 한복판에서 외교적 해법을 모색했습니다.

레이니 전 대사는 빌 클린턴 행정부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사이의 협력을 이끌어내며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했습니다. 카터의 평양 방문은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얼어붙었던 북미 관계에도 대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그가 위기 상황에서 외교적 돌파구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습니다. 레이니는 1947년 19세의 나이로 한국에 파병돼 미 육군 방첩대 요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감리교 목사로 다시 한국을 찾아 연세대에서 강의했습니다. 한국어를 구사한 최초의 미국 대사로 알려진 이유도 이 같은 오랜 인연과 경험에 있습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그는 한국의 역사와 정치, 사회를 폭넓게 이해하며 한미 관계의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재임 중에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정치인과 학자들을 미국 에모리대학교에 초청하며 교류의 폭도 넓혔습니다.

제임스 레이니 전 대사는 13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의 한미 관계 발전과 평화 증진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1997년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습니다. 그의 삶은 위기의 순간에도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대화가 평화를 여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친한파’ 제임스 레이니 전 美대사 별세…1차 북핵위기 때 카터 방북 주선, 한미 관계에 남긴 다리

19세의 미군 방첩대원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딘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 대사의 삶은 한미 관계의 굵직한 장면들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는 군인으로 한국을 경험한 뒤 감리교 목사와 교육자로 다시 한국을 찾았고, 훗날 주한 미국 대사로 양국의 가교 역할을 맡았습니다.

레이니 전 대사는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로 재직했습니다. 특히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긴장이 고조되자, 빌 클린턴 행정부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사이의 협력을 이끌며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했습니다. 이 방문은 막혀 있던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의 한국에 대한 이해는 외교관의 시선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한국어를 구사한 최초의 미국 대사로 알려진 그는 1959년 감리교 목사로 다시 한국에 파송돼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했습니다. 에모리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정치인과 학자들을 초빙하며 한국의 민주주의와 지식 사회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1997년 그에게 수교훈장 광화장을 서훈했습니다. 카터 센터 역시 레이니 전 대사가 평화 증진과 민주주의 수호, 인권 향상에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유산은 외교적 성과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아 온 시간 속에 남아 있습니다.

말년의 당부는 한미 관계의 미래를 향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양국 관계의 상호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며, 한미 사이의 견고한 다리가 미국의 판단에 따라 올라가고 내려가는 ‘도개교’처럼 바뀌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동맹의 가치를 부정한 말이 아니라, 더욱 성숙하고 균형 잡힌 관계를 바라는 조언에 가까웠습니다. 한국을 깊이 이해했던 ‘친한파’ 외교관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한미 동맹이 일방적 의존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책임 위에서 지속돼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제임스 레이니 전 대사는 13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놓은 다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는 대화로 평화를 모색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며, 양국이 각자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은 앞으로도 한미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유산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Reference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society/12128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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