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의 한마디가 예상치 못한 역사 논쟁으로 번졌습니다. 하영은 최근 방송에서 “증조부께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고 소개했습니다. 증조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까지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설명은 자랑스러운 가족사로 전해졌지만, 방송 직후 증조부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온라인에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안상호가 고종의 주치의였다는 사실과 대정친목회 활동 기록입니다. 특히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된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점,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는 점이 거론됐습니다. 여기에 고종 독살설까지 연결되면서, 서로 다른 시기의 사실과 추정이 하나의 의혹처럼 소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자 심용환 소장은 고종의 주치의였다는 이유만으로 안상호를 친일파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고종 독살설은 3·1운동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역사적 사실로 확정된 내용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또한 특정 단체에 가입했다는 기록만으로는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확인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 인사들이 참여한 단체에 소속됐고, 일본의 시정 홍보에 집안이 활용된 정황은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기록의 존재와 친일 행위의 실체를 구분하지 않으면,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이번 논란은 가족의 자랑스러운 이력이 공개되는 순간, 그 이면의 역사적 맥락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기록과 단정 사이, 친일파 단정 신중해야…역사학자, 하영 증조부 논란에 입 열었다
한 단체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친일파가 될 수 있을까요? 역사학자 심용환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구체적인 친일 부역 행위가 확인되기 전에는 친일파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기록입니다. 대정친목회에는 친일 성향 인사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단체 가입 사실만으로 개인의 구체적인 활동 내용과 행적까지 모두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록은 판단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결론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심 소장은 안상호가 당시 엘리트였고, 친일 인사들이 참여한 단체에 소속됐으며, 일본의 시정 홍보에 집안이 활용된 점은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이러한 정황과 별개로 일본의 식민 통치에 협력하거나 부역했다는 구체적인 행위가 확인돼야 친일파라는 역사적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종의 주치의였다는 사실 역시 친일 논란의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고종 독살설은 3·1운동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확정된 사실이 아닌 풍문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따라서 주치의였다는 이유만으로 독살에 관여했거나 친일 인사였다고 단정하는 것 역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번 논란이 보여주는 것은 역사적 기록을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입니다. 한 줄의 명단이나 한 차례의 언급만으로 인물 전체를 규정하기보다, 당시의 맥락과 실제 행동, 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친일파 여부는 비난의 속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근거와 충분한 검증을 통해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11533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