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보다 최대 40% 저렴한 유전체 분석 서비스가 병원과 연구기관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노보진은 한국지사 설립 이후 RNA 시퀀싱, 싱글셀 분석, 유전체·단백질 분석 서비스의 가격을 잇달아 낮추며 시장 확대에 나섰습니다. 비용 절감이 절실한 연구 현장에서는 매력적인 제안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할인된 분석 비용 뒤에는 한국인 유전정보의 해외 반출 가능성이라는 민감한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유전체에는 머리색과 눈동자 색, 키 같은 외형 정보뿐 아니라 혈통과 조상, 유전질환 위험, 알코올·카페인 대사 능력, 약물 반응과 만성질환 발병 가능성까지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물학적 특성을 총망라한 ‘생체 백과사전’에 가까운 정보입니다.
해외로 보내진 유전정보, 누가 어떻게 관리하나
노보진은 한국에서 의뢰받은 유전체 정보를 싱가포르 등 해외로 보내 분석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현행 법령상 유전체 분석을 위해 혈액 등의 검체를 해외로 반출하거나 해외에서 검사하는 행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국외로 넘어간 데이터의 보관·이용·제공 과정을 국내 정부와 의뢰기관이 충분히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유전체 정보는 한 번 유출되면 비밀번호처럼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개인의 질병 위험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유전적 특성까지 추정할 수 있어 피해 범위가 넓습니다. 특히 데이터가 연구와 신약 개발에 활용되는 과정에서 어떤 기관과 공유되는지, 보관 기간은 얼마인지, 재식별 가능성을 어떻게 차단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면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정부 연구비를 받는 기관을 대상으로 특정 중국 유전체 기업의 서비스를 사실상 제한한 것도 이러한 우려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노보진은 미국이 지정한 ‘우려 기업’ 목록에 포함됐으며, 창업자가 중국 유전체 연구기관 출신이라는 점도 논란이 됐습니다.
초저가 경쟁이 국내 생태계까지 흔들 수 있다
가격 인하는 소비자와 연구기관의 부담을 낮추지만, 자본력을 앞세운 해외 기업의 공세가 장기화하면 국내 기업에는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유전체 분석은 정밀 장비와 전문인력, 데이터 처리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산업입니다. 수익성이 악화되면 국내 기업이 설비 투자와 인재 양성을 이어가기 어려워지고, 결국 한국의 바이오 데이터 분석 역량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핵심은 단순히 ‘얼마나 싼가’가 아닙니다. 분석 데이터가 어디에서 처리되고, 어떤 기준으로 보호되며, 연구 종료 이후 어떻게 폐기되는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한국인 유전정보가 국경 밖으로 넘어가는 현 상황에서 가격 경쟁만 앞세운다면, 눈앞의 비용 절감 대신 국가 안보와 산업 자립이라는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다.
초저가 경쟁이 무너뜨릴 수 있는 것들, 한국인 유전정보 넘어갈 판…中 기업 초저가 공세에 발칵
노보진은 한국에서 의뢰받은 유전체 정보를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분석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데이터가 국경을 넘어간 뒤다. 현행 제도만으로는 해당 정보가 어느 기관의 서버에 저장되는지, 어떤 연구와 결합되는지, 제3자에게 제공되는지 정부가 끝까지 확인하기 어렵다. ‘한국인 유전정보 넘어갈 판…中 기업 초저가 공세에 발칵’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한 번 해외로 넘어간 유전정보는 되돌리기 어렵다
유전정보는 단순한 검사 결과가 아니다. 질병 위험, 혈통, 약물 반응, 신체적 특성 등 개인의 고유한 정보가 종합적으로 담긴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삭제하더라도 다른 건강 기록이나 연구 데이터와 결합하면 개인을 다시 식별할 가능성이 남는다.
더 큰 문제는 유전정보가 한 번 복제되면 회수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해외 서버에 저장된 원본을 삭제하더라도 이미 생성된 분석 결과와 연구용 사본까지 모두 없앴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과거에는 의미가 없던 데이터가 새로운 질병 예측이나 신약 개발에 활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해외 분석이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 분석 목적과 데이터 항목을 구체적으로 제한할 것
- 가명·암호화 조치를 적용하고 원본 데이터의 국외 이전을 최소화할 것
- 저장 기간과 파기 절차를 계약서에 명시할 것
- 재위탁과 제3자 제공을 원칙적으로 제한할 것
- 국내 감독기관이 서버, 처리 과정, 파기 여부를 점검할 권한을 확보할 것
- 데이터 이동 이력과 접근 기록을 상시 보관할 것
무엇보다 이용자에게 해외 이전 사실과 활용 범위를 명확히 알리고, 실질적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 형식적인 약관 한 줄만으로는 민감정보 보호라는 책임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가격 40% 인하가 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초저가 공세는 소비자와 연구기관에 당장 비용 절감 효과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자본력이 큰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보다 크게 낮은 가격을 장기간 유지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국내 기업은 설비와 분석 장비에 투자하고 전문인력을 고용해야 하지만, 가격 경쟁이 심해질수록 연구개발에 투입할 자원이 줄어든다.
수익성이 악화되면 기업은 장비 교체와 품질관리, 데이터 보안 인력 확보를 미루게 된다. 결국 가격만 낮고 분석 품질과 보안 수준은 떨어지는 시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 국내 기업이 버티지 못하면 병원과 연구기관은 특정 해외 사업자에 의존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분석 기술과 데이터 처리 역량 자체가 국외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유전체 산업은 단순한 검사 서비스가 아니다. 신약 개발, 정밀의료, 바이오 연구를 떠받치는 핵심 기반이다. 단기적인 할인 혜택만 보고 시장을 방치하면 국내 연구 생태계와 바이오산업의 자립 기반이 함께 약화될 수 있다.
정부와 업계가 함께 마련해야 할 기준
정부는 유전체 데이터의 해외 이전과 분석 과정을 별도로 관리할 수 있는 촘촘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해외 기업의 국내 영업을 일률적으로 막기보다, 데이터의 민감도와 분석 목적, 보안 수준에 따라 사전 심사와 사후 점검을 병행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공공기관과 국가건강검진 관련 기관부터 데이터 보관 위치, 처리 주체, 재위탁 여부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 기업에는 보안 설비와 전문인력 확보를 지원하고, 가격이 아니라 품질과 보안 수준을 평가하는 공공 조달 기준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유전체 데이터는 한 번 유출되면 개인정보 침해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안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초저가라는 이유만으로 분석 업체를 선택하기 전에, 데이터가 어디로 이동하고 누가 통제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해외 이전을 통제하고 국내 산업의 생존을 함께 지키는 구체적인 안전장치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0927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