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단속으로 가장 큰 불안을 느끼는 집단 중 하나는 라틴계 이민자들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미국 국경순찰대원의 절반 이상이 라틴계이며,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도 약 20~30%가 라틴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이민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집단과 그 정책을 집행하는 인력이 상당 부분 겹치는 셈입니다. 다만 이들이 모두 최근 이민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시민권을 취득한 이민자 가정 출신, 또는 오래전부터 미국 사회에 정착한 라틴계 구성원도 포함됩니다.
왜 라틴계가 이민 단속 기관에 들어갈까?
가장 현실적인 이유로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경제적 기회가 꼽힙니다. 국경순찰대와 ICE는 비교적 안정적인 공공부문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력과 사회적 지위를 쌓을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미국 사회의 ‘내부인’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도 작용합니다.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도 단속의 대상이 아니라 법과 질서를 지키는 공직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자신의 소속감과 지위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라틴계 사회가 하나의 정치적 목소리만 내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는 미등록 이민자의 증가가 임금과 일자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먼저 정착한 이민자들이 어렵게 얻은 사회적·경제적 위치를 지키려 합니다. 따라서 라틴계라는 정체성이 반드시 친이민 정책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모순이라기보다, 이민 문제를 둘러싼 계층·세대·정치 성향의 차이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라틴계 안에서도 누군가는 단속을 두려워하는 이민자이고, 다른 누군가는 미국의 국경과 이민법을 집행하는 공직자일 수 있는 것입니다.
트럼프 이민 단속 최전선에 ‘이들’ 있다는데…국경순찰대 무려 절반, 그 뿌리는 어디에 있나
이 현상은 트럼프 시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 먼저 정착한 라틴계 이민자와 그 후손들이 뒤따라오는 이민자들을 경계해 온 역사는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의 핵심에는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값싼 노동력이 만든 일자리 경쟁
1950년대 미국 기업들은 저렴한 이주 노동력을 활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라틴계 노동자들은 미등록 이민자가 임금을 낮추고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일부 라틴계 지도자와 단체가 대규모 추방 정책인 ‘웻백 작전(Operation Wetback)’을 지지한 배경에도 이런 경제적 불안이 자리했습니다.
1960~1970년대에도 비슷한 갈등이 이어졌습니다. 미국 농장노동자노조(UFW) 일부 활동가들은 미등록 이민자를 노동조합의 조직화와 임금 개선을 방해하는 경쟁자로 인식했습니다. 이민자 신고나 자체적인 국경 순찰이 벌어지면서 라틴계 공동체 내부의 긴장도 커졌습니다.
1994년 주민발의안 187호가 보여준 내부의 시각 차이
라틴계 사회의 이민관은 하나로 통일돼 있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4년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 187호입니다. 이 법안은 미등록 이민자와 가족의 공공서비스 이용을 제한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인권 침해 논란이 컸지만, 당시 라틴계 유권자의 약 25%가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투표 전 조사에서는 찬성을 고려한 비율이 절반에 가까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는 이민자 출신이라는 정체성이 반드시 친이민 정책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민자’에서 ‘미국의 내부인’으로
먼저 미국 사회에 진입한 이들은 자신들이 어렵게 얻은 일자리와 계층적 지위를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동시에 단속받는 이민자가 아니라, 미국의 법과 질서를 집행하는 구성원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도 커졌습니다.
이러한 심리는 국경순찰대와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라틴계 인력이 진출하는 배경과도 연결됩니다. 안정적인 공직과 경제적 기회뿐 아니라, 미국 사회의 ‘내부인’으로 소속되고 싶다는 열망이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최근 미국 보수 진영 역시 인종보다 이민, 다문화주의, 사회 질서에 대한 입장을 중심으로 지지층을 넓혀 왔습니다. 그 결과 라틴계 유권자 가운데에서도 이민 제한과 강력한 국경 통제를 지지하는 흐름이 커졌습니다. 특히 라틴계 남성과 멕시코 접경 지역에서 공화당 지지가 확대된 점은 이런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결국 라틴계의 단속 참여와 반이민 정책 지지는 단순한 모순으로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이해관계, 먼저 정착한 이들의 기득권 의식, 미국 사회에 대한 소속감, 정치적 가치관이 오랜 시간 겹쳐져 오늘의 복잡한 정치 지형을 만든 것입니다.
Reference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world/121217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