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일, 미국 여성운동의 가장 선명한 얼굴 중 한 사람이었던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 뉴욕 자택에서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단에 따르면 그는 자신을 사랑한 이들 일부가 곁을 지키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습니다. 사인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은 단순한 부고로 읽히지 않습니다. 긴 머리와 에비에이터 안경으로 기억되는 한 명의 활동가가 떠난 사건인 동시에, 1960~70년대 여성해방운동에서 출발해 60년 이상 이어진 미국 페미니즘의 한 시대가 조용히 막을 내린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스타이넘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조직가, 정치 캠페이너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사회의 중심 의제로 끌어올린 인물이었습니다. 미국 언론이 그를 “여성운동의 결정적 상징”, “사회 변화의 기업가”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삶은 늘 현장에 가까웠습니다. 플레이보이 클럽에 잠입해 여성 노동의 현실을 폭로했고, 이후 Ms. 매거진을 공동 창간해 낙태권·임금격차·성차별·정치 참여 같은 문제를 대중 매체의 전면으로 옮겼습니다. 여성의 경험이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와 제도의 문제라는 사실을, 그는 글과 조직을 통해 끈질기게 보여줬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페미니즘의 얼굴”이 사라진 일로만 남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미국 사회에는 더 큰 질문을 남깁니다. 재생산권과 성평등, 인종과 계급의 문제가 다시 첨예해진 시대에, 우리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평생 밀어 올린 변화의 언어를 어떻게 이어 갈 것인가. 그의 마지막은 조용했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미국 사회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플레이보이 버니에서 폭로 기자로: gloria steinem의 위험한 첫 르포
화려한 토끼 귀와 코르셋, 미소를 강요하는 유니폼 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었을까요? 1963년, 젊은 프리랜서 기자였던 gloria steinem은 그 답을 찾기 위해 뉴욕 플레이보이 클럽에 직접 들어갔습니다. 그는 ‘플레이보이 버니’ 웨이트리스로 위장 취업해, 여성들이 겪는 노동 현실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당시 플레이보이 클럽은 세련된 도시 문화와 성공의 상징처럼 소비됐습니다. 그러나 스타이넘이 마주한 현장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버니들은 외모와 몸매를 엄격하게 관리받았고, 긴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 손님과 관리자의 일방적인 요구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매력적인 이미지로 포장된 서비스 산업이 여성 노동자를 어떻게 통제하고 소모하는지 보여주는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그녀는 이 경험을 르포로 정리해 세상에 알렸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단순한 ‘충격 고발’에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스타이넘의 글은 여성의 몸과 외모가 상품처럼 다뤄지는 구조,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려진 노동권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냈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일”이라는 이미지 뒤에도 불평등한 노동 조건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취재였습니다.
이 잠입취재는 gloria steinem을 대중적으로 알린 결정적 계기이자, 훗날 그가 여성운동의 대표적 목소리로 성장하는 출발점이 됐습니다. 그는 여성 문제를 추상적인 구호로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현장에 들어가 경험하고, 기록하고, 사회가 외면하던 이야기를 읽히게 만들었습니다.
플레이보이 버니 취재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을 남깁니다. 누군가의 노동이 ‘아름다움’, ‘친절’,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때, 우리는 그 이면의 임금과 안전, 존엄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스타이넘의 답은 분명했습니다. 변화는 보이지 않던 현실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gloria steinem, 여성의 삶을 잡지 한 권으로 바꾸다
당시 여성 잡지가 집안일, 패션, 뷰티를 중심으로 여성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Ms. 매거진은 전혀 다른 질문을 표지 위에 올렸습니다. 낙태권은 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인가? 같은 일을 하고도 여성의 임금이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성폭력과 차별은 왜 오랫동안 침묵 속에 남아 있었는가?
1972년, gloria steinem과 동료들은 이 질문들을 대중 잡지의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던 불평등을 ‘개인의 고민’이나 ‘운이 나쁜 경험’으로 남겨두지 않고, 정치와 법, 노동과 문화가 함께 풀어야 할 공적 의제로 바꾼 것입니다.
Ms.의 혁신은 단순히 페미니즘 기사를 많이 실은 데 있지 않았습니다. 이 잡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직장에서 겪는 차별, 가정에서 떠안는 무급 노동, 몸과 출산을 둘러싼 결정권의 부재는 혼자 감당할 일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사적인 경험을 공적인 언어로
잡지는 여성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도록 도왔습니다. 임금격차는 개인의 협상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차별이었고, 성폭력은 수치심으로 감춰야 할 사건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폭력이었습니다. 정치 참여 역시 일부 엘리트 여성의 선택이 아니라, 삶의 조건을 바꾸기 위한 시민의 권리로 제시됐습니다.
이러한 편집 방향은 강력했습니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고백은 다른 여성들에게 “나만 이런 일을 겪은 것이 아니었다”는 인식을 주었고, 그 인식은 연대와 행동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시대의 문제의식은 Ms.의 지면에서 더 넓은 독자층에게 전달됐습니다.
잡지가 만든 새로운 여성 독자
Ms.는 여성을 소비자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노동자이자 유권자, 시민이자 변화의 주체였습니다. 이 관점은 여성 잡지의 문법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물론 잡지 한 권이 모든 현실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잡지는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말할 수 있는지,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는지를 바꿀 수 있습니다. gloria steinem이 공동 창간한 Ms. 매거진의 가장 큰 유산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성의 삶을 둘러싼 침묵을 깨고, 개인의 목소리를 사회 변화의 언어로 연결한 것입니다.
gloria steinem, 잡지 밖에서 움직인 조직과 정치의 힘
한 사람의 연설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강력한 메시지가 사람들을 움직일 수는 있어도, 그 움직임이 제도와 일상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결국 조직, 연결망, 정치 참여의 통로가 필요합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은 바로 그 지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Ms. 매거진을 통해 여성들의 경험을 공적 의제로 끌어냈지만, 글을 쓰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이 직접 투표하고, 출마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돕는 조직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1년 공동 설립한 National Women’s Political Caucus(NWPC)입니다. 벨라 앱주그, 셜리 치솜, 베티 프리단 등과 함께 만든 이 조직은 여성의 공직 진출과 정치 참여를 확대하고, 성평등 입법과 ERA(헌법상 성평등 수정안)를 지지하는 기반이 됐습니다. “여성 문제”를 개인의 불만이 아니라 선거와 법률, 권력의 문제로 바꾼 셈입니다.
스타이넘은 Women’s Action Alliance, Women’s Media Center 같은 조직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이들은 교육 현장과 지역사회, 언론 환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여성의 이야기가 뉴스와 대중문화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가 정치적 대표성만큼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말년의 ‘토킹 서클(talking circles)’ 활동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거대한 무대의 연설보다 작은 원 안에서 서로의 경험을 말하고 듣는 일. 이는 페미니즘을 특정 유명인의 주장으로 남기지 않고, 각자의 삶에서 출발하는 연대의 문화로 확장하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래서 gloria steinem의 진짜 유산은 유명한 안경과 선명한 문장, 혹은 한 시대를 대표한 상징성에만 있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녀가 남긴 더 오래가는 자산은 여성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목소리를 모으고, 정치적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게 만든 네트워크의 힘입니다.
gloria steinem 이후의 페미니즘은 어디로 향하는가
‘가장 유명한 페미니스트의 이름’을 묻는 질문에 더 이상 한 사람만 떠올릴 수 없다면, 그것은 운동의 위기일까요? 아니면 더 많은 목소리가 중심에 설 수 있게 된 변화일까요?
오랫동안 gloria steinem은 미국 페미니즘을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이름이었습니다. 긴 머리와 안경, 날카로운 글쓰기, 거리와 정치권을 오간 조직 활동은 한 시대의 여성운동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재가 남긴 질문은 단순한 후계자 찾기에 있지 않습니다. 이제 페미니즘은 누구 한 명의 얼굴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의제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단일 아이콘에서 다중 리더십으로
오늘의 페미니즘은 재생산권만으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임금 격차, 돌봄 노동, 성폭력, 인종차별, 장애 권리, 이민, 기후위기, LGBTQ+ 권리까지 서로 얽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유명 인물이 모든 현실을 대표하기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이 변화는 운동의 분열이라기보다 확장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지역 활동가, 노동조합 조직가, 디지털 캠페인 운영자, 법률가, 학생, 예술가가 각자의 자리에서 리더십을 만드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의 다음 얼굴은 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듣고 행동으로 연결하는 수많은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말하기’보다 ‘함께 듣기’의 정치
스타이넘이 말년까지 강조한 토킹 서클은 이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거대한 무대의 연설보다 작은 원 안의 대화, 정답을 제시하는 리더보다 경험을 나누는 참여자가 중요해지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문화는 특히 세대·인종·계급 간의 긴장을 다루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페미니즘이 충돌할 때 필요한 것은 누가 더 ‘정통’인지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가 아직 충분히 들리지 않았는지를 묻는 일입니다.
남겨진 질문은 현재형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유산은 완성된 답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음 질문을 우리에게 남깁니다.
- 재생산의 자유를 의료·돌봄·경제적 조건까지 포함해 어떻게 다시 정의할 것인가
- 여성의 대표성을 숫자에만 머물지 않고 실질적 권력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 서로 다른 정체성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아이콘의 시대가 끝난다고 해서 운동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되던 페미니즘이 이제 더 많은 이름, 더 많은 지역, 더 많은 목소리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상실 이후에 가능한 가장 강력한 계승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