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뉴욕 카네기홀은 임윤찬의 모차르트를 들으려는 관객으로 가득 찼습니다.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객석 곳곳에서는 한국어 대화가 들려왔습니다. 관객들이 기다린 것은 익숙하고 경쾌한, 이른바 ‘모차르트다운 모차르트’였을까요?
검정 슈트와 보타이를 갖춰 입고 무대에 오른 임윤찬은 인사를 마치자마자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무대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할 때 첫 음을 내기 전 긴 침묵을 지켰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마치 해야 할 일을 하러 온 사람처럼 담담하게 손을 건반 위에 얹었습니다.
첫 곡은 열아홉 살의 모차르트가 쓴 피아노 소나타 C장조 K.279. 맑고 경쾌한 선율을 기대했다면 첫 음부터 낯설게 느껴졌을 법합니다. 임윤찬은 음형을 또렷하게 펼쳐 보이기보다, 깊숙한 곳에 잠겨 있던 소리를 하나씩 끌어올리는 듯 연주했습니다. 가볍고 화사한 노래 대신 묵직한 음색이 번졌고, 음악은 생생하기보다 아득하고 경쾌하기보다 처연하게 들렸습니다.
3악장에서도 모차르트 특유의 위트와 리듬감을 정면으로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익살스러움을 슬쩍 비껴가듯 흘려보내며 뜻밖의 재미를 만들었습니다. 조금 더 생동감 있게 다가왔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 거리감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만큼 묘한 매력으로 귀를 붙들었습니다. 카네기홀의 첫 곡부터 임윤찬은 관객을 우리가 알던 모차르트와는 다른 세계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다시 카네기홀에 선 임윤찬…이번엔 모차르트다: ‘모차르트답다’는 것과 악보에 충실하다는 것
임윤찬의 모차르트는 익숙한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때로는 선율이 아득하게 가라앉았고, 때로는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을 과감하게 늘리며 낯선 긴장을 만들었다. 양손의 음량과 음색을 바꿔 빛과 그림자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그의 방식은 한편으로는 치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차르트 특유의 자연스러움을 가린다는 인상도 남겼다.
실제로 최근 유럽 공연을 두고 비평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임윤찬의 표현이 작품 자체를 압도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반대로 감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해석이라는 호평도 나왔다. 전통적인 연주 관습에 비추면 이견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달리해 볼 수 있다. ‘모차르트답게’ 들리는 것과 악보에 충실하게 접근하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일일까?
카네기홀 무대에서 임윤찬은 음 하나하나에 역할을 부여하고, 성부의 균형과 다이내믹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특히 변주곡 악장에서는 각 변주의 성격을 분명히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질서 안에 놓았다. 선택이 낯설게 들릴 수는 있어도, 그 판단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차이는 마지막 작품인 A단조 소나타 K.310에서 더욱 또렷해졌다. 임윤찬은 거친 첫 악장에서 슬픔뿐 아니라 모차르트가 겪었을 불안과 좌절을 떠올리게 했다. 마지막 악장은 잠시 밝은 A장조로 향하지만, 끝내 A단조의 긴장으로 돌아와 어둠을 남긴다. 그는 비극성을 과장하기보다 음색과 다이내믹의 대비로 긴장을 빚어냈다. 익숙한 해석에 질문을 던지는 마무리였다.
이번 공연은 임윤찬이 카네기홀에서 네 차례에 걸쳐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판타지아 전곡을 연주하는 여정의 첫 무대였다. 관객을 단번에 사로잡는 익숙한 모차르트 대신, 악보를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지 생각하게 한 출발점이었다. 낯섦과 확신이 함께했던 첫 무대는 앞으로 이어질 여정에 어떤 모차르트를 그려낼지 궁금하게 만든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10230708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