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을 마시러 트랙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넌다면, 그 술은 어떤 맛일까요? 경북 안동 맹개마을의 진맥소주를 만나러 가는 길은 강물의 사정부터 살펴야 합니다. 물이 얕을 땐 징검다리를 건너지만, 강물이 불어나면 차량이나 트랙터의 힘을 빌려야 하죠. 강을 건너고 나면 앞에는 낙동강, 뒤에는 청량산이 펼쳐집니다.
이곳의 술은 풍경뿐 아니라 땅과 시간에서 시작됩니다. 맹개술도가는 마을에서 직접 유기농으로 기른 우리밀 100%로 진맥소주를 빚습니다. ‘진맥’은 밀을 뜻하는 옛말입니다. 16세기 조리서 『수운잡방』에 남은 진맥소주의 이름과 제조법을 바탕으로, 문헌 속 술을 오늘의 밭과 증류실에서 되살렸습니다.
수확한 밀은 곧바로 술이 되지 않습니다. 발효와 두 차례 증류를 거친 뒤 옹기와 스테인리스 용기에서 최소 1년을 숙성합니다. 밭에서는 계절이 바뀌고, 술은 그 시간을 천천히 받아들입니다. 밀을 거둔 자리에는 메밀을 심어 다음 계절을 이어갑니다.
그러니 진맥소주 한 잔에는 곡물의 풍미만 담기는 게 아닙니다. 강을 건너 도착한 마을의 풍경, 밀을 기르는 농사의 시간, 오래된 기록을 다시 잇는 사람들의 손길도 함께 담깁니다. 강을 건너야 비로소 만나는 술. 그 첫 모금은 어쩌면 술이 태어난 땅을 먼저 만난 뒤에야 온전히 느껴질지 모릅니다.
트랙터를 타고 강을 건너야 만날 수 있는 비밀의 소주가 있다: 술이 빚어낸 밤, 사람으로 완성된 기억
증류실이 디제이 파티의 무대가 되고, 다음 날 아침에는 메밀꽃밭 위로 핸드팬 소리가 번졌다. 맹개마을에서 진맥소주를 만나는 경험은 잔을 비우는 순간에 끝나지 않았다. 음악과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나눈 시간이 술의 기억에 함께 스며들었다.
밤에는 쉬고 있는 증류기 너머로 빛과 음악이 퍼졌다. 평소라면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떠났을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춤을 췄다. 다음 날 아침, 메밀꽃밭에서 울린 핸드팬의 맑은 소리는 전날 밤의 흥겨움과는 다른 여운을 남겼다. 증류실과 꽃밭은 술을 빚는 장소이자,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무대였다.
술을 만드는 일은 증류실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증류에 쓰고 남은 밀 찌꺼기는 거름으로 돌아가고, 증류수도 마을의 온수로 재활용된다. 농사지은 밀로 술을 빚고, 남은 것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는 순환이 맹개마을의 일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속가능성은 이곳에서 거름과 따뜻한 물처럼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어졌다.
밤새 술과 음식을 나눈 뒤 맞은 아침에는 김선영 대표가 끓여준 북엇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한 국 한 그릇 앞에서 전날 밤의 사람들이 다시 마주 앉았다. 그리고 떠날 때는 마스터 디스틸러 박성호 이사가 직접 트랙터를 몰아 손님들을 낙동강 건너까지 배웅했다. 트랙터를 타고 강을 건너야 만날 수 있는 술은, 돌아가는 길까지 사람의 온기로 기억에 남았다.
라벨에 적힌 원료와 제조법만으로는 다 전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술지게미가 돌아가는 밭, 아침 식탁의 북엇국, 강을 건너는 트랙터의 흔들림. 맹개마을에서 만난 진맥소주는 그 모든 풍경과 환대가 더해져 한 잔을 오래 기억하게 했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10126925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