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 아래 낙엽을 밟으며 걷다가 발밑에서 ‘으악!’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은행 열매를 밟았다면 신발에 밴 냄새가 집 안까지 따라오고, 자동차 타이어에 끼어 주차장에 악취를 퍼뜨리기도 하죠.
하지만 냄새의 범인은 은행나무 전체가 아닙니다. 열매를 맺는 암나무의 말랑한 겉껍질에 든 뷰티르산이 악취를 일으킵니다. 수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으니 같은 은행나무라도 냄새 문제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셈입니다.
은행나무가 도심 가로수로 사랑받은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 서울에서는 가지와 잎이 신호등이나 상가 간판을 가릴 수 있는 양버즘나무 대신, 공해에 강하고 단풍이 아름다운 은행나무가 대안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서울시는 1971년 은행나무를 서울의 상징 나무로 지정했고, 그 결과 오늘날 서울 가로수의 약 35%를 은행나무가 차지하게 됐습니다.
오래 살고 도시 환경에도 잘 견디는 나무였지만, 가을마다 떨어지는 열매가 뜻밖의 불편을 안겼습니다. 게다가 은행나무는 나이가 들어 생식기관이 나타나기 전까지 암수 구별이 쉽지 않아, 심을 때부터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만 골라내기도 어려웠습니다. 아름다운 단풍 뒤에 숨은 ‘냄새 폭탄’의 정체는 결국 은행나무 전체가 아니라, 열매를 맺는 암나무였습니다.
으악! 밟으면 하루 종일 찝찝…냄새 폭탄 범인 따로 있었다: 냄새 없는 도시를 만드는 3일의 과학
은행나무 암수는 예전엔 열매가 맺힐 때까지 기다려야 알 수 있었습니다. 생식기관이 나타나 성별을 확인하기까지 보통 15~30년이 걸렸죠. 이제는 잎사귀 하나로, 단 3일 만에 암수를 가려낼 수 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개발한 DNA 성감별 기술은 잎에서 DNA를 추출한 뒤 PCR로 수나무에만 있는 유전 표지를 확인합니다. 공통 표지와 수나무 특이 표지가 함께 나오면 수나무, 공통 표지만 나오면 암나무로 판별합니다. 아직 열매를 맺지 않은 어린 나무도 구별할 수 있어, 악취의 원인이 되는 암나무를 미리 찾아낼 수 있습니다.
검사법은 더 간편해졌습니다. 2023년 충북대 연구팀이 개발한 등온증폭법(LAMP)은 일정한 온도에서 DNA를 증폭해 색이나 형광 반응으로 결과를 확인합니다. 온도를 여러 차례 바꾸는 PCR보다 장비 구성이 단순하고 판독도 편리합니다. 현재는 한 그루당 3만~4만 원 정도로 검사해 3일이면 성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은 가로수 관리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2014년부터 암나무를 수나무로 단계적으로 교체해 왔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은행나무 암그루는 2021년 2만8216그루에서 지난해 2만2982그루로 줄었고, 수나무는 7만5743그루에서 7만6416그루로 늘었습니다.
은행나무는 오래 살고, 이미 자란 나무를 한꺼번에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새로 심거나 고사한 나무를 수나무로 대체하는 방식은 악취를 줄이면서 오래된 가로수도 지키려는 해법입니다. ‘으악! 밟으면 하루 종일 찝찝…냄새 폭탄 범인 따로 있었다’는 불쾌한 경험도, 잎 하나에서 시작된 과학과 도시의 꾸준한 관리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923396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