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두 재배면적은 역대 최대, 옥수수 생산량은 역대 두 번째 규모로 예상됐습니다. 공급이 넉넉하다면 가격은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최근 1년 사이 대두 선물가격은 27%, 옥수수는 20% 이상 올랐습니다.
밭에서는 풍년인데 거래소에서는 곡물값이 폭등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상승의 핵심은 작황이 아니라 전쟁, 에너지 가격, 투기자금, 바이오연료 수요, 물류 병목에 있습니다.
전쟁이 에너지 가격을 밀어 올리자 곡물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했다
지난 2월 말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간 무력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에너지 공급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투자자들은 곡물을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수 있는 자산으로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곡물 선물시장에 투기성 자금이 빠르게 유입됐습니다. 곡물 6개 선물의 투기적 순포지션은 1월 하순 순매도 25만8000계약에서 3월 중순 순매수 63만5000계약으로 전환됐습니다. 불과 8주 만에 4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수급 전망이 크게 나빠지지 않았는데도 매수세가 한쪽으로 몰리면 가격은 실제 생산량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번 곡물값 상승이 ‘날씨 장세’가 아니라 ‘포지셔닝 장세’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바이오연료 수요와 생산비 상승도 가격을 자극했다
에너지 안보 우려는 곡물의 수요 구조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대체 연료로 바이오연료가 주목받으면서 대두를 가공해 기름을 추출하는 크러시 수요가 증가했습니다. 생산량이 충분해도 사용처가 늘어나면 시장에 남는 재고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 대두 재고는 반년 만에 21억 부셸에서 10억6000만 부셸로 감소했습니다. 옥수수 재고도 90억2000만 부셸에서 52억9000만 부셸로 줄었습니다.
여기에 비료와 연료 가격 상승이 겹치면서 곡물 생산비도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풍작이라는 사실만으로 가격 하락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곡물 가격은 생산량뿐 아니라 재고, 소비처, 에너지 가격, 생산비를 함께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파나마운하 병목이 곡물의 ‘도착 가격’을 끌어올렸다
물류 차질도 상승세를 키웠습니다. 파나마운하는 저수지 수위가 비교적 양호했지만, 연말 엘니뇨에 대비해 선박의 최대 허용 흘수를 낮췄습니다. 선박 통항 수가 유지되더라도 한 척이 실을 수 있는 화물량이 줄면서 전체 운송능력이 떨어진 것입니다.
때마침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산 에너지를 대체하려는 미국산 원유·가스 수출선이 파나마운하로 몰렸습니다. 통항 대기 선박은 올해 초 40척에서 지난달 113척까지 늘었고, 하루짜리 통항권의 평균 경매가격은 1년 전보다 16배 상승한 11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곡물은 생산지에서 거래되는 가격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운임과 대기기간이 길어지면 최종 구매자가 부담하는 총조달비용이 상승합니다. 미국 걸프발 운임이 브라질 산토스발보다 톤당 약 22달러 비싼 것도 이런 물류 병목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번 사태는 풍년인데도 곡물값이 오른 것이 아니라, 풍년의 효과를 압도할 만큼 금융시장과 물류망에서 충격이 발생한 사례에 가깝습니다. 곡물 가격을 판단할 때는 작황 전망만 볼 것이 아니라 선물시장 포지션, 에너지 가격, 재고, 바이오연료 수요, 운임까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전쟁이 붙인 불에 물류 병목이 기름을 부었다 — “올해 주식·금만 오른 게 아니었네”…역대급 풍년인데 곡물값 급등, 무슨 일?
곡물값을 끌어올린 것은 전쟁과 투기자금만이 아니었습니다. 물류의 핵심 통로인 파나마운하에서 병목이 발생하면서 운송비와 대기 비용까지 급등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운하에 물이 부족해서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요 수원인 가툰호의 수위는 양호했지만, 파나마운하청이 엘니뇨에 대비해 선박의 최대 허용 흘수를 단계적으로 낮추면서 선박 한 척이 실을 수 있는 화물량이 줄었습니다. 통항 선박 수가 유지돼도 전체 운송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겹쳤습니다. 중동산 에너지를 대체하려는 미국산 원유와 가스 수출선이 파나마운하로 몰리면서 제한된 통항 능력에 수요가 한꺼번에 집중된 것입니다. 그 결과 통항 대기 선박은 올해 초 40척에서 지난달 113척으로 늘었습니다.
하루짜리 통항권의 평균 경매가격은 1년 전보다 16배 폭등한 110만 달러를 기록했고, 일부 경매에서는 378만 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가스운반선 가운데는 대기 기간이 19일에 이르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이처럼 곡물 운송은 생산량만으로 비용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운하 통항 여부, 선박 확보 경쟁, 대기 기간, 연료비가 모두 최종 조달가격에 반영됩니다. 미국 걸프에서 출발해 파나마운하를 거치는 운임은 t당 73.81달러로, 파나마를 우회하는 브라질 산토스발 운임 51.98달러보다 약 22달러 비쌌습니다.
결국 이번 사태는 ‘가뭄 때문에 운하가 막혔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쟁이 선박 수요를 자극했고, 운하 운영 규정이 처리 능력을 낮추면서 병목이 커졌습니다. 역대급 풍년에도 곡물값이 오른 이유를 이해하려면 밭의 작황뿐 아니라 운송 경로와 물류비까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Reference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stock/121517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