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도, 모델 규모도 공개되지 않은 인공지능이 무료로 등장했습니다. 이름은 ‘옥스 알파(Ox Alpha)’. 오픈라우터에 올라온 당시 개발사 표기에는 회사명 대신 ‘스텔스’라는 단어만 적혀 있었습니다. 정체를 숨긴 채 등장한 탓에 “구글이 차세대 모델을 몰래 공개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습니다.
놀라운 기록은 불과 일주일 만에 나왔습니다. 옥스 알파는 오픈라우터 전체 사용량 1위에 올랐습니다. 7일 동안 무려 3억4349만 번 호출됐고, 처리한 규모는 27조2493억 토큰에 달했습니다. 2위 모델인 딥시크 V4 플래시보다 두 배 이상 많았고, 미국산 모델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된 GPT-5.6 루나와 비교하면 다섯 배가 넘는 수치였습니다.
정체는 중국 즈푸AI의 비공개 테스트 모델
결국 26일, 중국 인공지능 기업 즈푸AI가 옥스 알파의 정체를 공개했습니다. 이 모델은 정식 출시를 앞둔 ‘GLM-5.3 플래시’의 사전 테스트 버전이었습니다. 개발사와 모델 정보를 숨긴 채 실제 개발자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 데이터를 모으는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모델 전체 규모는 3200억 개 파라미터지만, 실제 작업에서는 약 180억 개만 활성화됩니다. 전문가 혼합 구조를 적용해 수학, 코딩 등 작업별로 필요한 부분만 작동하도록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모델을 통째로 가동하지 않아도 되니 비용과 처리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즈푸AI는 모델 가중치도 MIT 라이선스로 공개했습니다. 상업적 활용과 수정, 재판매까지 허용되는 조건입니다. 폐쇄형 모델을 중심으로 경쟁하는 미국 기업들과 달리,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개방성과 낮은 가격을 앞세운 것입니다.
성능은 80~90%, 가격은 최대 100분의 1
GLM-5.3 플래시의 종합 지능 지수는 57점으로, 미국 최상위 모델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습니다. 코딩과 에이전트 작업에서는 클로드 오퍼스 4.8급이라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최고 성능에서는 여전히 미국 모델이 앞서지만, 일반적인 업무에 필요한 수준은 상당 부분 따라잡았다는 의미입니다.
가격 경쟁력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 입력 100만 토큰: 0.15달러
- 출력 100만 토큰: 0.50달러
- 비교 대상 최상위 모델: 입력 10달러, 출력 50달러
성능이 미국 최상위 모델의 80~90% 수준이라면 가격은 최대 100분의 1에 불과합니다. 기업과 개발자 입장에서는 모든 작업에 가장 똑똑한 모델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충분히 쓸 만한 성능을 훨씬 저렴하게 제공하는 모델로 사용량이 몰리는 이유입니다.
옥스 알파의 1위 등극은 단순히 새로운 모델이 등장했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인공지능 경쟁의 기준이 ‘누가 가장 똑똑한가’에서 ‘누가 충분히 똑똑하면서도 더 싸고 쉽게 쓸 수 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정체를 숨긴 모델이 세계 1위에 오른 일주일은, 중국 AI의 전략과 앞으로의 시장 판도를 동시에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AI 경쟁의 승부처는 ‘가장 똑똑한 모델’이 아닐 수 있다: 구글이 몰래 푼 거 아니었어?…세계 1위 찍고 정체 드러낸 AI
더 거대한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GPU와 전력을 투입하던 시대가 서서히 변하고 있습니다. 모델의 파라미터 수와 학습 데이터 규모만으로 성능을 설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지식을 한꺼번에 꺼내는 능력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능력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옥스 알파는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전체 파라미터는 3200억 개에 달하지만, 실제 작업에서는 약 180억 개만 작동하는 전문가 혼합 구조를 적용했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는 수학에 특화된 부분을, 코딩을 수행할 때는 관련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하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는 성능과 비용 사이의 균형을 바꿉니다. 모델 전체를 매번 가동하지 않으니 연산 부담이 줄고, 상대적으로 적은 GPU 자원으로도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웨이트를 MIT 라이선스로 공개하면서 누구나 모델을 수정하고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까지 열었습니다. 초거대 모델을 가진 기업만 AI 경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공식에 균열이 생긴 셈입니다.
AI 에이전트 시대, 지식보다 중요한 능력
AI 경쟁의 무대는 단순한 질의응답에서 에이전트 작업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에이전트는 모르는 정보를 직접 기억하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웹에서 검색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고, 외부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됩니다. 대신 어떤 정보를 찾아야 하는지 판단하고,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며, 여러 단계의 결과를 정확히 연결해야 합니다.
결국 승자는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모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목표를 이해하고 필요한 도구를 고른 뒤, 계획한 작업을 끝까지 수행하는 모델이 실제 현장에서 더 높은 가치를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성능이 조금 낮더라도 빠르고 저렴하며 안정적으로 실행된다면 기업과 개발자에게는 훨씬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AI 경쟁의 주자는 거대한 데이터센터에만 머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전문가 혼합 구조와 경량화 기술이 발전하면 지금의 초거대 모델이 내는 성능을 개인용 PC나 웹브라우저에서도 구현할 수 있습니다. ‘구글이 몰래 푼 거 아니었어?’라는 의문을 낳았던 정체불명의 모델이 단 일주일 만에 세계 1위 사용량을 기록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미래의 승부처는 모델의 크기가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얼마나 똑똑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280007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