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달 수입은 고작 50만원이었습니다. 출근은 첫차로 시작했고, 퇴근은 막차를 타야 끝났습니다.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도배 현장에서 장보영 대표가 처음 느낀 감정은 “마치 남탕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는 당혹감이었습니다.
당시 현장은 여성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일을 받으려면 방산시장 벽지 매장이나 현장 반장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했고, 실력보다 인맥이 먼저 작용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장 대표는 현장에서 담배 심부름을 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체구와 부족한 경험을 이유로 무시당하는 순간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남편이 크게 다쳐 장애등급을 받으면서 가정의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반지하 월세방을 전전하는 동안 아이들은 아토피와 잦은 감기에 시달렸고, 병원비와 생활비는 매달 큰 부담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새 옷 한 벌을 사주는 일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었습니다.
장 대표는 경력단절여성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도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수료했다고 바로 숙련공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보 시절 일당은 약 3만원에 불과했고, 혼자 현장을 맡을 수 있는 기술자가 되기까지는 보통 3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벽지 상자 하나도 제대로 들지 못했던 그는 매일 현장에서 몸을 단련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팔로 힘껏 들어도 바닥에서 1~2㎝ 떨어뜨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체력과 기술을 함께 길렀습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도 현장을 마치지 못하면 퇴근을 미뤄야 했습니다.
장 대표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절박함이었습니다. “나는 엄마니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뎠습니다. 그렇게 1년을 버티고, 3년 이상 기술을 쌓으며 그는 단순히 벽지를 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벽의 상태를 읽는 전문가로 성장했습니다.
17년이 지난 지금, 장 대표는 20여 명의 팀장과 팀원을 이끄는 사업가가 됐습니다. 한때 들기조차 어려웠던 벽지 상자를 직접 짊어지던 엄마는 이제 월 2000만원 규모의 사업을 운영하며 새로운 도배사들에게 기회를 건네고 있습니다. 시작은 남탕 같던 낯선 현장이었지만, 그곳에서 끝까지 버틴 시간이 장 대표의 인생을 다시 세우는 기술이 됐습니다.
벽지가 아니라 벽을 보는 사람의 성공 공식, ‘남탕 들어가는 느낌…월 2000만원 버는 엄마의 기술’
도배는 벽지를 붙이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기존 벽지를 뜯고, 울퉁불퉁한 벽면을 정리한 뒤 습기와 결로, 균열과 훼손 상태를 살펴야 한다. 벽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새 벽지를 붙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들뜨거나 곰팡이가 생길 수 있다.
장보영 다올민 대표가 강조하는 말은 분명하다.
“고객은 벽지를 보지만 전문가는 벽을 봐야 합니다.”
같은 벽지를 사용하더라도 벽의 상태를 어떻게 판단하고 밑작업을 어디까지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불필요한 공사를 권하지 않고, 추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미리 설명한 것도 고객의 신뢰를 얻은 이유였다. 도배 기술은 손끝에서 완성되지만, 고객을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은 현장을 읽는 눈과 정직한 설명에서 나왔다.
‘남탕 들어가는 느낌’에도 현장을 떠나지 않은 이유
장 대표가 도배를 시작했을 때 현장은 남성 중심이었다. 작은 체구의 여성이 건설 현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었고, 그는 당시를 “남탕에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담배 심부름을 하고, 첫차로 출근해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
첫 달 수입은 50만원에 불과했다. 초보 일당은 약 3만원이었고, 혼자 숙련공으로 일하기까지는 보통 3년이 필요했다. 체력은 부족했고 현장마다 조건도 달랐다. 도배가 고소득 직업이라는 말만 듣고 뛰어들었다면 버티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장 대표가 살아남은 비결은 단기간의 수입보다 기술을 쌓는 데 집중한 데 있었다. 그는 최소 1년은 버티고, 3~5년은 꾸준히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20명이 도배를 시작하면 끝까지 남는 사람은 한 명에 불과할 만큼, 현장은 만만하지 않다.
소개보다 강력했던 것은 고객의 리뷰
장 대표의 사업을 성장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플랫폼 ‘숨고’였다. 과거에는 방산시장 벽지 매장이나 현장 반장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일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플랫폼에서는 성별과 나이보다 작업 결과와 고객 리뷰가 먼저 평가받았다.
한 건의 작업을 꼼꼼하게 마치면 칭찬 리뷰가 쌓였고, 리뷰를 본 새로운 고객이 다시 장 대표를 찾았다. 현재 다올민 매출의 90%가 숨고를 통해 발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플랫폼이 고객과 만날 기회를 제공했다면, 재방문과 추천을 만든 것은 장 대표의 기술과 신뢰였다.
이 과정은 ‘남탕 들어가는 느낌…월 2000만원 버는 엄마의 기술’이라는 성공 사례의 핵심을 보여준다. 고소득의 출발점은 특별한 비법이나 빠른 성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책임지는 전문성과 한 번의 작업을 다음 기회로 연결하는 신뢰였다.
혼자 일하던 기술자에서 20명의 대표로
장 대표는 이제 하루 한 곳을 맡던 기술자를 넘어 20여 명의 팀장·팀원과 함께 움직이는 사업가가 됐다. 다올민은 월 150건에 달하는 도배 작업을 수행하며, 대형 기숙사 건물 전체를 열흘 만에 마무리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그러나 장 대표는 도배를 단순한 고소득 직업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체력과 끈기가 필요하고, 계절과 시장 상황에 따라 수입이 달라질 수 있다. 기술이 쌓이기 전까지는 힘든 작업을 반복해야 하며, 고객의 공간을 책임진다는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일의 매력은 분명하다. 실력이 쌓이면 나이와 배경에 관계없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자신의 기술을 바탕으로 팀과 사업을 확장할 수도 있다. 장 대표가 직접 경험한 것처럼, 작은 기회 하나가 한 사람의 생계를 바꾸고 사업가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제 그의 목표는 자신의 성공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도배 기술을 가르치고, 새로운 기술자가 현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받았던 기회를 다음 세대에 돌려주겠다는 꿈이다. 벽지를 넘어 벽을 보고, 작업을 넘어 사람의 미래까지 바라보는 것. 그것이 장보영 대표가 현장에서 살아남아 성공을 만든 진짜 공식이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263536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