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은 왜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을까.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디세이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오디세우스는 신의 저주를 받아 바다를 떠도는 초월적 영웅이 아니다. 그는 전쟁에서 이긴 뒤에도 자신이 무엇을 무너뜨렸는지 깨닫지 못한 인간이며,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10년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늙은 전사다.
영화는 키클롭스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 같은 신화적 장치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그 이면에 놓인 인간의 죄를 응시한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함락한 방식은 단순한 전략적 승리가 아니다. 신에게 바칠 선물로 위장한 목마는 환대와 신뢰를 악용한 배신이었고, 적과 공존할 가능성을 닫아버린 폭력이었다. 승리를 위해 인간 사회의 가장 오래된 약속을 깨뜨린 순간,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이미 순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맷 데이먼이 연기한 오디세우스에게서 먼저 보이는 것은 영광이 아니라 피로다. 그는 부하들을 잃고, 가족에게 돌아갈 길을 잃고, 무엇보다 자신이 한 일을 외면할 명분을 잃어간다. 이 여정은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는 영웅담이 아니라, 전쟁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한 인간의 참회에 가깝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오디세우스는 승전의 영웅이라기보다 외상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군인처럼 보인다.
놀런은 ‘귀향’이라는 고대 서사의 핵심을 통해 영웅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끝까지 영광만 붙든 아가멤논이 파국을 맞는 반면,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과오를 기억해내면서 비로소 가족에게 돌아갈 자격을 얻는다. 집에 도착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으로 돌아가느냐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오디세이는 신화를 인간의 이야기로 바꾼다. 영웅 오디세우스의 인간선언…놀런이 완성한 172분의 참회록이라는 표현은 이 영화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잃어버린 명성을 회복하는 행진이 아니다. 불멸의 신이 될 수 없는 한 인간이 자신의 죄와 유한함을 받아들이며, 늦게나마 더 나은 마침표를 향해 나아가는 고통스러운 귀환이다.
영웅 오디세우스의 인간선언…놀런이 완성한 172분의 참회록: 바다 위에서 마주한 문명의 거울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성을 무너뜨린 목마는 과연 지혜로운 승리였을까. 아니면 인간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 최초의 배신이었을까. 크리스토퍼 놀런의 ‘오디세이’는 이 익숙한 영웅담을 단순한 모험과 승리의 서사로 소비하지 않는다. 영화는 목마의 계략을 ‘환대’와 상호존중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의 가치, 크세니아를 파괴한 사건으로 바라본다.
손님과 주인을 믿고 선물을 주고받는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 공동체는 적과 아군만 남은 제로섬의 세계로 변한다. 오디세우스와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함락한 뒤에도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아야 했던 까닭은 신들의 변덕만이 아니다. 놀런은 그 긴 표류를 오만과 탐욕으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자신의 과오를 되짚는 참회 여정으로 바꿔놓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오디세우스는 완벽한 정복자가 아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동료들을 모두 잃고, 자신이 만든 폭력의 결과에서 도망칠 수 없는 군인이다. 신의 도움을 받아 귀향하는 영웅이라기보다, 과거를 기억하고 책임지려는 인간에 가깝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역시 초월적 기적보다 자신의 잘못을 직시한 데 있다. 영웅 오디세우스의 인간선언…놀런이 완성한 172분의 참회록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지점이다.
이 철학적 질문은 놀런 특유의 압도적인 현실감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장편 영화 최초로 모든 장면을 아이맥스 70㎜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고, 배우들은 실제 바다에 나가 범선의 노를 저으며 항해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거친 파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내면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처럼 기능한다. 맷 데이먼을 중심으로 앤 해서웨이, 젠데이아, 로버트 패틴슨 등 화려한 배우진이 만들어내는 긴장감도 이 장엄한 여정에 힘을 보탠다.
결국 ‘오디세이’가 묻는 것은 영웅이 어떻게 승리했는가가 아니다. 승리의 과정에서 인간성을 잃었다면, 그 승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172분의 항해 끝에 오디세우스가 마주하는 것은 신의 심판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다. 그리고 영화는 조용히 질문한다. 과오를 기억하고 타인을 다시 신뢰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05697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