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근대 조선에 상륙한 댄스뮤직…꽁꽁타령과 춤춰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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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by 한국경제

90여 년 전, 근대 조선의 무대와 음반 속에는 이미 ‘댄스뮤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날 우리의 귀에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용어가 당시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그 뒷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놀라운 비밀들이 숨어 있습니다.

근대 조선에 상륙한 댄스뮤직은 1930년대 초반부터 음반을 통해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32년 ‘시에론’ 레코드에서는 ‘신아리랑’과 ‘캬라방’이 연주곡으로 발매되었으며, 이들 곡은 일본과 서양의 다양한 리듬과 음악적 요소를 융합한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특히, 이 음반들은 악단이 연주하는 무반주 곡들이었지만, 곡 제목과 표기에는 ‘댄스곡’과 ‘댄스뮤직’이라는 용어가 활용되며, 당시에도 댄스와 춤이 밀접하게 연결된 음악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음악은 단순한 연주에 그치지 않고, 당시 유명 악단들이 조선 청중을 위해 녹음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프랑스 출신 악사들이 일본에 건너와 일본의 인기 댄스홀과 무랑루즈에서 활동하던 모습은 특히 흥미롭죠. 뿐만 아니라, 이들이 조선 유행가를 댄스뮤직으로 편곡하면서, 왈츠와 폭스트로트 같은 서양 춤 유형을 포함시킨 점은 오늘날의 댄스스포츠와도 닮아 있습니다.

이들이 연주한 ‘신아리랑’이 특별한 이유는, 무용가 조택원이 곡에 맞춰 안무한 춤이 무대에 소개된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춤의 구체적인 동작은 무보와 함께 전해지지 않지만, ‘꽁꽁타령’이 음반으로 발매된 후 만들어진 무보 자료를 보면, 대중가요와 연결된 근대 무용의 또 다른 모습이 엿보입니다.

특히 ‘꽁꽁타령’은 무보를 통해 당시 춤의 동작들이 상세히 기록된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는데, 그 춤은 조선의 전통적인 움직임과 서양식 춤 동작이 혼합된 복합적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스무 가지 동작들이 반복되는 구성은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당시 대중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는 일본의 ‘온도(音頭)’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1933년 발매된 ‘도쿄 온도’와 ‘사쿠라 온도’와 유사한 무용 방식입니다.

이처럼, 1930년대 조선에서 이미 ‘댄스뮤직’의 개념은 실험되고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죠. 대중무용의 구체적 모습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결합하며, 당시 사람들은 춤과 음악을 통해 현대적 감각을 경험하고자 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다소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그때도 이미 ‘꽁꽁타령과 춤춰봐요’와 같은 신나는 무대와 음악이 존재했고, 그 비밀은 지금도 일부 희귀한 자료를 통해 조명되고 있습니다.

과거 조선의 무대 뒤편에는 이렇게 신비롭고도 창의적인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 지금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요?

신민요와 춤의 만남, 꽁꽁타령에 담긴 역사

1930년대, 근대 조선에 상륙한 댄스뮤직은 당시 민속 음악과 서양 춤이 만나는 흥미로운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1935년 발매된 음반은 이 시대 대중무용의 새로운 흔적이 담긴 중요한 자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곡은 일반적인 민요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조선 민속과 일본 신민요 온도(音頭)의 영향을 보여주는 무보(무용 동작 설명서)가 함께 존재합니다. 이러한 무보는 대중가요와 결합된 최초의 시도 중 하나로, 근대 조선의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희귀한 사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의 춤 동작이 스무 가지 동작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무보는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설계된 대중적 춤 방식으로,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온도(음頭)의 안무 방식을 참고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일본의 나 와 유사한 후리쓰케(안무 가이드)가 그림과 함께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이는 근대 조선 대중무용사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유일무이한 자료입니다.

이처럼 은 단순한 민요를 넘어서 춤과 음악이 결합된 근대 대중무용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작품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온도와 매우 유사한 무보와 춤 구조를 공유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유산들은 당시 조선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대중무용이 어떻게 발전하고 변모했는지 보여주는 소중한 증거입니다.

지금은 잊혀진 대중무용의 흔적이지만, 무보와 춤 사위는 우리 근대사 속에서 근대 조선이 서양과 일본 문화와 어떻게 접촉하며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모색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지금도 일부 열정적인 연구자와 춤꾼이 그 원형을 복원하려 애쓰는 만큼, 앞으로 이 흥미로운 역사를 다시금 조명하는 일이 의미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대중무용’의 소중한 흔적과 그 속에 담긴 역사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204356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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