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한을 기억하는 방법: 이태원 참사가 바꾼 한국의 애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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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사러 갔다 못 돌아온 내 아들… 이 신발 신으러 꼭 한번 와줘.”

한 어머니가 아들의 생일에 남긴 이 문장은 짧지만, 10·29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멈춰 세운다. 참사는 흔히 사망자 수와 책임 공방의 언어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 숫자 안에는 약속을 하고 외출했던 사람, 미래를 준비하던 사람, 가족에게 돌아올 예정이었던 사람이 있었다.

고 이지한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뒤 배우의 길로 방향을 잡았다. 아직 모든 것이 완성된 스타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가능성을 하나씩 쌓아가던 청년 배우였다. 배우로서의 다음 장면을 준비하던 그의 시간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갑작스럽게 멈췄다. 그는 24세였다.

어머니 조미은 씨의 편지는 ‘유가족의 슬픔’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들이 신을 구두를 준비하고, 혹시 돌아오는 순간을 놓칠까 현관 가까이 있고 싶다는 마음은 상실이 얼마나 일상적인 순간에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 생일은 축하의 날이어야 하지만, 남겨진 가족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다시 기다리게 하는 날이 된다.

그래서 이지 한을 기억한다는 것은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배우 한 명의 비극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다. 그가 어떤 꿈을 향해 가고 있었는지, 누군가의 아들이자 동료였던 그의 삶이 왜 안전하게 귀가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는지를 묻는 일이다.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 청년의 미래가 끊긴 그날, 사회와 국가는 무엇을 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이름을 기억하며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이지 한, 스물네 살 배우가 향하던 아직 시작되지 않은 미래

이지한은 이미 모든 것을 이룬 스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뒤, 배우로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던 청년이었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정점이 아니라, 앞으로의 가능성이 하나씩 열리던 출발선에 가까웠습니다.

배우의 길은 대개 빠르게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디션을 보고, 작은 역할과 영상 작업을 거치며, 자신만의 표정과 목소리를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지한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지, 어떤 동료들과 작업하게 될지, 또 어떤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서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한 사람의 현재만이 아니라, 그가 살아갈 수 있었던 수많은 미래를 함께 멈춰 세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나이는 스물네 살이었습니다. 이제 막 진로를 구체화하고, 꿈을 직업으로 바꾸기 위해 가장 치열하게 움직이던 시기입니다. 특히 연습생과 신인 배우의 삶은 안정된 궤도와는 거리가 멉니다. 다음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함 속에서도, 많은 청년은 자신의 가능성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견뎌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지한의 이름은 단지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이력으로만 기억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시작하려던 청년이었고, 아직 쓰이지 않은 작품과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내일을 품고 있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참사를 이야기할 때 사망자 수는 사건의 규모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숫자만으로는 사라진 삶의 결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이지한을 기억한다는 것은 “스물네 살 배우”라는 짧은 정보 너머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한 청년이 꿈꾸던 장면들, 가족과 나누었을 일상, 그리고 충분히 이어질 수 있었던 미래를 함께 떠올리는 일입니다.

이지 한, 사망자 수에서 이름과 꿈으로

참사 직후 사회는 먼저 숫자를 마주합니다. 사망자와 부상자 수, 구조 현황, 책임 기관의 발표가 뉴스의 중심이 됩니다. 숫자는 사건의 규모를 보여주지만, 그 안에 있던 각자의 삶까지 설명해 주지는 못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 질문은 달라집니다. “몇 명이 숨졌는가”에서 “그들은 누구였고, 어떤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는가”로 시선이 이동합니다. 고 이지한 배우를 기억하는 방식도 이 변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린 뒤 배우로 활동을 이어가던 청년이었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필모그래피, 앞으로 만나게 될 작품과 사람들, 가족과 나누었을 일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한 명의 유명인에 대한 안타까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막 출발선에 서 있던 한 청년의 미래가 멈췄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특히 생일을 맞아 전해진 어머니의 편지는 추모의 언어를 더 구체적으로 만듭니다. 아들이 좋아했을 물건을 떠올리고, 돌아오지 못한 날의 장면을 기억하며, 여전히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기억은 참사를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한 가족의 식탁과 현관, 생일과 선물 속으로 끌어옵니다.

애도는 숫자를 반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라진 사람의 이름과 꿈을 기억할 때, 책임을 묻는 질문도 더 구체적이 됩니다.

한국 사회의 애도 방식도 조금씩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희생자를 하나의 통계가 아니라 이름, 직업, 관계, 꿈을 가진 개인으로 바라보는 흐름입니다. 이지한의 생일과 가족의 기억이 공적 담론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일은 감정적인 추모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왜 그날 안전하지 않았는가”, “왜 책임과 재발 방지 대책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는가”를 계속 묻게 합니다.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결국,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사회적 약속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지 한 어머니의 슬픔은 언제 공적 목소리가 되는가

아들의 생일을 맞아 선물과 편지를 준비하는 일은 지극히 사적인 애도의 모습이다. 고 이지 한 배우의 어머니 조미은 씨가 전한 메시지 역시 처음에는 한 어머니의 그리움에서 출발한다. “구두 사러 갔다 못 돌아온 내 아들”을 기다리며, 준비한 신발을 신으러 한 번만 와 달라고 말하는 마음은 어떤 사회적 언어보다 먼저 개인의 상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슬픔은 그리움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들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왜 책임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지, 왜 진상 규명은 여전히 더딘지를 묻는 순간 애도는 공적 목소리가 된다.

개인의 편지가 사회를 향한 질문이 될 때

유가족의 편지는 흔히 ‘감동적인 사연’으로 소비되기 쉽다. 하지만 이지 한 어머니의 말은 단순히 눈물을 자아내는 문장이 아니다. 아들을 잃은 뒤에도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국가와 사회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 참사는 왜 막지 못했는가
  • 구조와 대응은 적절했는가
  • 책임 규명은 왜 지연되는가
  •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한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형 참사에서 유가족의 목소리는 사적인 비탄을 넘어, 사회 안전망과 국가의 책임을 점검하게 만드는 중요한 증언이 된다.

‘Grief Activism’이란 무엇인가

이런 흐름을 설명하는 말이 바로 Grief Activism, 즉 애도와 사회적 행동이 결합된 실천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이 기자회견, 인터뷰, 추모식, 공개 편지 등을 통해 사건의 진실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행위가 여기에 속한다.

이지 한 어머니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생일을 기억하는 일은 추모이지만, 그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책임을 묻는 일은 시민적 행동이다. 슬픔이 행동으로 바뀌는 것은 유가족이 애도를 충분히 끝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애도를 끝낼 수 없는 현실이 그들을 거리와 미디어 앞으로 나오게 만든다.

유가족의 목소리는 ‘정치적 이용’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상실을 만들지 않기 위한 사회적 증언일 수 있다.

말하는 유가족에게 돌아오는 2차 가해

문제는 유가족이 공적 발언을 시작하는 순간, 그 목소리마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는 책임을 묻는 가족에게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언론 노출을 원한다”는 식의 비난이 이어지곤 한다.

이런 반응은 유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겪은 사람이, 상실의 원인과 재발 방지책을 묻는 것만으로 공격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악성 댓글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가족의 발언권을 위축시키는 2차 가해다.

특히 참사 이후의 사회적 논의가 정쟁이나 진영 대결로만 축소될 때, 희생자의 이름과 유가족의 고통은 쉽게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이지 한을 기억하는 일은 한 청년 배우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유가족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 그 말이 책임 있는 변화로 이어지는 사회를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슬픔을 듣는 사회가 기억을 바꾼다

한 어머니가 아들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참사를 얼마나 오래 기억하는가. 그리고 유가족의 슬픔을 단지 소비하지 않고, 사회를 바꾸는 질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애도는 개인에게 남겨진 감정이지만, 참사의 원인과 책임은 개인만의 몫이 될 수 없다. 이지 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공적 의미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목소리는 잃어버린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게 하고, 앞으로 잃지 않기 위해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게 한다.

이지 한과 말하는 유가족을 공격하는 사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정부와 사회에 책임을 묻기 시작한 유가족에게 돌아온 것은 공감만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언론 노출을 즐긴다”는 식의 비난과 악성 댓글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주는 2차 가해가 됩니다.

고 이지한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 이후 인터뷰와 공개 발언을 통해 진상 규명과 책임을 요구해 온 일은 단순한 개인적 호소가 아닙니다. 이는 “왜 막지 못했는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시민 모두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유가족의 슬픔은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안전 시스템의 실패를 말하는 순간 공적 의제가 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유가족의 발언이 쉽게 정치적 공방으로 축소된다는 점입니다. 책임을 묻는 목소리를 불편해하며 침묵을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피해 사실을 말하는 사람조차 자신을 방어해야 합니다. 애도할 시간마저 공격에 대응하는 데 소진되는 현실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지 한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추모의 말에만 머무르지 않는 일입니다. 한 청년 배우가 꿈을 이어갈 수 없게 된 이유를 묻고, 유가족이 안전과 책임을 말할 때 더 이상 공격받지 않도록 사회의 태도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진정한 기억은 슬픔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만드는 질문을 끝까지 이어 가는 데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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