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내란죄 무기징역: 지귀연 판사가 만든 헌정사 첫 판결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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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정에서 전직 대통령에게 내란죄로 무기징역 선고가 내려졌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2026년 2월 19일, 그 믿기 어려운 장면이 현실이 됐고, 그 중심에 지귀연 부장판사가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에서 “비상계엄 선포”라는 표면적 조치 자체를 넘어, 국회의 기능을 저지·마비시키려는 목적 아래 실력을 행사한 행위가 형법상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이 강하게 각인된 이유는, 지귀연 부장판사가 ‘명분’과 ‘목적’을 분명히 갈라 세웠기 때문이다. 국가 위기 타개 같은 주장은 어디까지나 동기일 뿐, 국회 봉쇄처럼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위법한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취지다. 판결문에 등장한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 없다”는 표현은, 그 논지를 직관적으로 압축해 독자(그리고 국민)가 쟁점을 놓치지 않도록 만든 문장으로 남았다.

또 하나의 핵심은 “대통령도 내란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의문에 정면으로 답했다는 점이다. 지귀연 부장판사는 로마 시대부터 근대 국민주권 국가에 이르기까지 법제의 흐름을 짚으며, 권력자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기본질서와 의회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누구든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을 판결 논리로 세웠다. 그 결과, 이번 사건은 단순한 유죄 선고를 넘어 한국 헌정사에서 권력 견제와 책임의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지귀연 내란죄 판결의 핵심: 명분과 목적의 구분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 없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꺼내든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내란죄 성립을 가르는 핵심 잣대를 압축한 표현이다. 독자가 이 문장에 멈칫하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군가의 말이 그럴듯해 보여도, 행위가 법을 넘어서는 순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직관적으로 찌르기 때문이다.

지귀연 부장판사의 논리는 한 줄로 요약된다. 명분(동기)과 목적(의도된 결과)은 다르며, 내란죄는 ‘좋은 말’이 아니라 ‘실제로 겨냥한 목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국가 위기 타개, 질서 회복 같은 주장은 동기일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 동기가 무엇이든, 국회의 기능을 저지·마비시키려는 방향으로 실력이 행사되었다면 형법상 국헌문란 목적을 충족한다고 본다.

이 구분은 판결의 설득력을 결정짓는 장치이기도 하다. 정치적 수사나 위기 담론은 언제든 등장할 수 있지만, 법은 다음 질문으로 돌아온다.

  •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무엇이었나?
  • 실제로 달성하려 한 목적은 무엇이었나?
  • 그 목적을 위해 어떤 ‘실력’이 행사되었나?

결국 ‘촛불’ 비유가 겨냥한 지점은 하나다. 명분이 아무리 고상해도, 수단과 목적이 헌정질서를 훼손하는 쪽으로 향하면 범죄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지귀연의 판결은 내란죄를 추상적인 정치 논쟁에서 끌어내려, 목적·행위·효과라는 법적 구조로 다시 고정해 놓는다.

지귀연과 함께 보는: 대통령도 내란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법적·역사적 깊이의 해부

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권력자도 내란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법조문 해석을 넘어 정치체제의 구조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왕과 황제, 그리고 대통령의 책임은 같은 듯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달라져 왔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길게 역사적 맥락을 호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력과 국가를 동일시하던 시대: “황제에게 반하는 것이 곧 국가에 반하는 것”

고대 로마에서 내란에 준하는 범죄는 국가의 기본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겨냥했다. 그러나 황제 시대를 거치며 국가와 군주를 동일시하는 인식이 강해졌고, 결과적으로 황제에 대한 반역이 곧 국가에 대한 범죄로 포섭되는 경향이 커졌다. 이 시기엔 “권력자 본인이 국가질서를 깨뜨린다”는 발상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웠다. 국가의 얼굴이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중세적 인식의 함정: “군주는 내란죄를 저지를 수 없다”는 관념

중세로 오면 또 다른 방향의 오류가 나타난다. 왕이 곧 국가라는 전제가 강화되면서, 역설적으로 왕은 반역죄·내란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 법의 언어로 말하면, 국가질서를 파괴하는 자는 ‘국가 밖의 적’으로 상정되었고, 군주는 그 범주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되었다. 이 관념은 권력 남용을 처벌하기보다 정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할 소지가 컸다.

근대 이후의 전환: 주권의 중심이 “왕”에서 “국민·의회”로 옮겨가다

18~19세기를 지나며 핵심이 바뀐다. 주권이 왕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된다는 관념이 확립되면서, 의회는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주권의 제도적 표현이 된다. 이때부터는 왕이든 대통령이든, 의회(국회) 기능을 공격하거나 마비시키는 행위가 곧 주권 침해로 해석될 수 있게 된다. 즉, 권력자는 더 이상 국가 그 자체가 아니라, 국가권력을 “잠시 맡아 행사하는 자”가 된다.

지귀연 판시가 던진 결론: “대통령도 내란죄를 저지를 수 있다”

지귀연 부장판사는 이 역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내란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오래된 통념을 정면으로 끊어냈다. 요지는 간명하다.

  • 내란죄는 지위가 아니라 목적과 행위로 성립한다.
  • 특히 국회 기능을 저지·마비시키려는 실력 행사는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죄에 해당할 수 있다.

결국 현대 민주국가에서 권력자의 책임은 “권력의 크기”만큼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크기만큼 더 엄격히 평가된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국가의 기본질서를 흔드는 순간 그 지위는 면책이 아니라 책임의 근거가 된다.

수사 권한과 증거의 힘: 정당성과 신뢰의 경계—지귀연 판사가 남긴 기준

공수처, 검찰, 경찰의 수사 권한이 충돌하는 사건에서 판결은 자칫 “절차 논쟁”에 삼켜질 수 있다. 그런데도 지귀연 부장판사는 수사 주체를 둘러싼 공방을 판결의 중심으로 끌고 가지 않았다. 질문을 바꿨기 때문이다. 누가 수사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됐느냐로 재판의 무게중심을 옮겼다.

핵심은 두 갈래였다. 첫째, 그는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권한을 인정하며 절차적 정당성의 기반을 세웠다. 권한 논쟁이 곧바로 “증거 무효”로 직결되지 않도록 법적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둘째, 더 결정적으로는 “설령 공수처 수사를 배제하더라도”라는 가정 아래, 검찰과 경찰이 확보한 증거만으로도 유죄 판단이 충분하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수사 권한 시비가 판결 전체를 흔들 ‘단일 스위치’가 되지 못하도록, 증거 체계를 다층으로 구성해 둔 논리다.

이 접근은 재판 신뢰를 만드는 방식에서도 의미가 크다. 권한 다툼이 격화될수록 대중은 판결을 “어느 기관의 승패”로 읽기 쉽다. 하지만 지귀연 판결의 문법은 기관 간 힘겨루기가 아니라, 법원이 증거를 통해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을 전면에 배치한다. 결국 이 섹션의 결론은 단순하다. 수사권 논쟁이 아무리 거세도, 증거가 촘촘하고 독립적으로 맞물릴 때 유죄 판단은 흔들리지 않는다—그 경계를 분명히 보여준 것이 이 재판의 한 장면이었다.

지귀연 판결의 역사적 의미와 민주주의의 미래: 법치주의에 남긴 경고와 약속

단순한 유죄 선고를 넘어, 지귀연 판결은 민주주의가 무엇으로 유지되는지 되묻는다. 권력의 언어가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을 두를 때, 법은 어디까지 이를 허용할 수 있는가. 이번 사건이 던진 메시지는 선명하다. 명분이 그럴듯하다는 이유만으로 헌정 질서를 멈춰 세울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을 겨눈 행위에 대한 ‘목적’ 판단

이번 판결의 역사성은 결과(무기징역)보다도 행위의 본질을 규정한 방식에 있다. 지귀연 부장판사는 비상조치의 형식을 취했더라도, 그 실질이 국회의 기능을 저지·마비시키려는 실력 행사라면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는 “절차를 갖춘 권력 행사처럼 보이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위험한 오해를 차단한다. 민주주의는 형식이 아니라, 작동하는 견제와 균형 위에서만 성립한다는 선언에 가깝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가 남긴 제도적 파장

지귀연 판결은 대통령의 지위가 책임을 가볍게 만드는 면책 조항이 될 수 없음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재확인했다. 이는 향후 한국 사법사에 두 가지 변화를 예고한다.

  • 권력형 사건의 기준점 형성: 최고 권력자 사건에서도 “정치적 해석” 이전에 법적 구성요건으로 판단하는 선례가 축적된다.
  • 헌정질서 침해에 대한 엄정한 경계선: 계엄, 긴급조치 등 국가 위기 프레임이 등장할 때, 민주주의의 기관(특히 국회)을 무력화하는 시도는 더 빨리, 더 강하게 위법성 판단의 대상이 된다.

사법이 남긴 메시지: 처벌을 넘어 ‘재발 방지의 언어’로

이번 사건이 한국 사회에 남긴 가장 깊은 울림은 “누가 이겼는가”가 아니라 “다음에 무엇이 달라지는가”에 있다. 지귀연 판결은 내란죄를 과거의 단어가 아니라 현재의 위험을 통제하는 법적 장치로 다시 세웠다. 민주주의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지만, 흔들림을 ‘위기’라는 말로 덮어버리는 순간 더 크게 무너진다. 이번 판결은 그 지점을 정확히 짚으며, 한국의 법치주의가 스스로를 갱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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