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당 1만4437달러. 런던금속거래소(LME)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최근 1년 동안 상승 폭만 45% 이상입니다. 많은 사람이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확대를 원인으로 꼽지만, 이번 급등의 불씨는 조금 달랐습니다. 가격을 먼저 끌어올린 것은 미국의 구리 50% 관세와 미중 간 자원 패권 경쟁이었습니다.
미국은 구리와 관련 제품을 국가 안보 및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전략 자원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부터 동판·파이프·케이블 등 구리 반제품과 파생 제품에 50%의 고율관세를 부과했습니다. 핵심은 가공 전 원료인 정련동에는 상대적으로 예외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차이를 이용해 글로벌 원자재 트레이더들은 관세가 본격화되기 전에 구리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말 그대로 ‘관세 50%’ 피하려 창고에 긁어모았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물량이 빠르게 미국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관세를 피할 수 있는 재고를 미리 쌓아두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구리는 실제 소비보다 정책 변화에 따른 선점 수요로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 결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의 구리 재고는 급격히 불어났습니다. 2년 전만 해도 전 세계 거래소 구리 재고에서 COMEX가 차지하는 비중은 1~2%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약 70%에 육박합니다. 세계 구리가 부족해서만이 아니라, 관세를 피하려는 물량이 미국 거래소와 창고에 집중된 결과입니다.
사재기가 끝나도 구리 가격이 쉽게 내려가기 어려운 이유
물론 관세 회피 목적의 재고 축적이 마무리되면 단기 수요는 둔화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구리 가격이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어렵습니다. 구리 시장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누적된 구조적 공급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남미의 주요 구리 광산은 노후화됐고, 폭우와 폭설 같은 기상이변이 발생할 때 생산 차질이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 구리 시장의 공급 과잉으로 광산업체들이 신규 광산 개발 투자를 줄였던 여파가 현재 공급 부족으로 되돌아온 셈입니다.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 광산은 조업 정상화가 지연됐고, 콩고의 카모아-카쿠라 광산도 생산 전망을 낮췄습니다. 여기에 주요 생산국의 기상 악화와 운영 차질이 겹치면서 공급망의 여유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작은 사고 하나에도 가격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입니다.
AI 데이터센터와 친환경 인프라 확대는 앞으로 구리 수요를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현재 가격 급등을 촉발한 직접적인 요인은 AI 수요 폭발보다 미국의 관세 정책, 관세 회피성 재고 이동, 미중 자원 경쟁, 구조적인 공급 부족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구리 가격을 바라볼 때는 AI 투자 계획만 볼 것이 아니라 미국의 추가 관세 조치, COMEX 재고 변화, 남미와 인도네시아 광산의 생산 회복 여부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사재기 물량이 시장에 다시 풀리는 시점과 공급 차질이 이어지는 시점이 엇갈린다면, 구리 가격의 변동성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낡은 광산과 기상이변이 만든 공급 절벽, 구리는 어디까지 오를까 — ‘관세 50%’ 피하려 창고에 긁어모았다…구리값 급등, AI 아니라 미국이 원인 [원자재로 살아남기]
구리 가격을 밀어 올린 것은 수요만이 아닙니다. 남미의 폭우와 폭설로 주요 광산의 조업이 중단되고,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 광산의 정상화가 늦어지는 등 공급망 곳곳에서 차질이 발생했습니다. 콩고 카모아-카쿠라 광산도 생산 전망을 낮추면서 시장의 공급 부족 우려는 더욱 커졌습니다.
문제는 이런 충격을 흡수할 여유가 과거보다 줄었다는 점입니다. 2010년대 중반 구리 공급 과잉을 경험한 채굴 기업들은 신규 광산 개발과 설비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기존 광산은 노후화됐고, 작은 기상이변이나 사고에도 생산량이 크게 흔들리는 구조가 됐습니다. 과거의 투자 부족이 오늘날 ‘공급 절벽’으로 되돌아온 셈입니다.
여기에 미국의 통상 정책이 가격 변동성을 키웠습니다. 미국이 구리 반제품과 파생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자, 글로벌 트레이더들은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정련동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관세 대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가공 전 구리가 미국으로 빠르게 유입됐고, 뉴욕상품거래소(COMEX) 재고가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재고가 쌓였다는 사실이 전 세계 공급이 충분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역별 재고 편중이 심해지면서 미국 밖 시장에서는 오히려 조달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구리값의 다음 방향을 가를 세 가지 변수
앞으로의 가격 흐름은 광산 회복 속도, 미중 갈등과 관세 정책, 실제 수요 증가 시점에 달려 있습니다. 광산 복구가 지연되고 추가 사고가 발생한다면 공급 부족은 장기화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조업이 예상보다 빠르게 정상화되거나 미국의 관세 정책이 완화되면, 관세 회피를 위한 재고 축적 수요가 줄며 가격이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확대는 장기적인 구리 수요를 지지하는 요인입니다. 다만 관련 투자가 본격화해 구리 사용량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재 가격 상승은 AI 수요 폭발보다는 미국의 재고 선점과 공급 차질의 영향이 더 큰 국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공급이 빠르게 늘어나기 어렵고 수요가 계속 확대될 경우 구리 가격이 연내 톤당 1만60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제시합니다. 이 전망이 현실화되면 전선·전자제품·자동차·건설업체는 원가 부담을 피하기 어려워집니다. 기업에는 장기 계약과 공급처 다변화가, 투자자에게는 광산 생산량과 거래소별 재고 흐름을 함께 확인하는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Reference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stock/121396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