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가지고 있던 흰 티셔츠와 똑같은 제품을 두 장 더 주문한 날이었다. 옷장 안에는 비슷한 색과 모양의 옷이 충분히 있었지만, 홈쇼핑 화면 속 상품은 이상하리만큼 매력적으로 보였다.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만큼은 새로운 것을 얻었다는 기쁨이 분명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패션을 좋아했다. 잡지 속 모델과 디자이너의 옷을 보며 언젠가 나도 저렇게 입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것을 직접 만들어내는 재능은 없었지만, 소비자로서 취향을 고르고 내 몸과 일상에 배치하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옷을 사는 행위는 어쩌면 세상에 흩어진 물질을 모아 나만의 모습으로 재구성하는 작은 채집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결제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무심코 튼 유튜브에서 죽은 사람의 옷과 물건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제야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이 많은 옷과 물건은 누가 어떻게 정리할까?
지금도 정리하기 벅찬 옷이 가득한데, 똑같은 흰 티셔츠를 세 장이나 갖게 되었다. 내가 살아 있을 때는 취향과 필요에 따라 고른 물건들이지만, 내가 사라지고 나면 누군가에게는 분류하고 처분해야 할 일이 된다. 소중하게 모은 것들이 남은 사람의 시간과 마음을 붙드는 짐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멀쩡한 옷을 무작정 버릴 수도 없다. 의류 폐기물은 해마다 쌓이고, 재활용되는 양은 일부에 그친다. 기부한 옷 역시 모두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상당량이 해외로 수출된 뒤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내가 ‘비움’이라고 부르는 행동이 실제로는 다른 장소로 쓰레기를 옮기는 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죽음을 떠올리자 쇼핑의 기쁨은 금세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 더 많이 갖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었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내가 남긴 것들을 대신 정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비움은 죽기 직전에 한꺼번에 해치우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조금씩 시작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흰 티셔츠 세 장은 사소한 소비였다. 그러나 그 옷들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사라진 뒤 무엇을 남기게 될지를 돌아보게 했다. 어쩌면 잘 사는 일과 잘 죽는 일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만난다. 오늘 꼭 필요한 것만 고르고, 필요 없는 것은 누군가에게 미리 건네는 일. 죽음의 옷장을 가볍게 만드는 연습은 그렇게 일상적인 선택에서 시작된다.
집에서 죽을 권리와 오늘부터 시작하는 비움: 흰 티셔츠를 두장 더 산 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소망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막상 그 순간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만 작성해두면 원하는 장소에서 죽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지만,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에서 설명을 듣고 등록해야 효력이 생긴다. 무엇보다 이 서류는 임종 장소를 선택하는 문서가 아니다. 담당 의사와 전문의가 환자를 임종 과정에 있다고 판단했을 때, 연명의료를 시행할지에 관한 본인의 뜻을 확인하는 장치에 가깝다.
집에서 임종하려면 진료를 이어갈 의사가 필요하다. 의료법상 환자가 최종 진료를 받은 뒤 48시간 이내에 사망하면, 의사가 다시 진찰하지 않고도 사망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다. 반대로 곁에 의사가 없고 사인을 확인하기 어려우면 검안과 변사 신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집에서 죽는 것이 무조건 부검 대상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사망 원인을 확인할 의료적 연결고리가 없다면 유족에게 큰 부담이 생긴다.
가정형 호스피스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현실은 충분하지 않다. 전국에 운영 기관이 많지 않고, 이용 가능한 질환에도 제한이 있다. 방문간호사가 환자의 사망 징후를 확인할 수는 있어도 사망을 진단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다. 집에서 죽고 싶다는 바람과 실제 제도 사이에는 여전히 커다란 간극이 놓여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적어도 죽은 뒤 남겨질 물건 때문에 가족의 시간과 마음이 오래 묶이지 않도록, 살아 있을 때 조금씩 정리하는 일이다. 입지 않는 옷을 무작정 버리기보다 필요한 사람에게 미리 나누고, 새 물건을 사기 전에는 이미 가진 것을 먼저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흰 티셔츠를 두장 더 산 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물건을 사고 소유하는 일은 잠깐의 기쁨을 주지만, 언젠가 그 물건의 마지막 처리는 누군가의 몫이 된다. 그러니 비움은 삶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내게 정말 필요한 것만 남겨 오늘의 시간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선택이다.
잘 죽기 위한 준비는 임종 직전에 시작되지 않는다. 장바구니에서 물건 하나를 덜어내는 순간, 쓰지 않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는 순간, 가족과 미뤄둔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이미 시작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남은 삶을 더 가볍고 밀도 있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Reference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202476i
